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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어느 절이

 

어느 절이

 

충청도 말로 어느 절이어느새라는 뜻이다. “어느 절이 가셨대유?” 그런데 너에겐 이 말이 꼭 어느 절에 가셨어요?”라는 말로 들려온다. “일용엄니 어느 절이 가셨어요? 왜요? 저도 절에 다녀보려고요. , 그래요, 잘됐네요. 저희 집사람은 화계사에 다녀요. 다미 갈 때 제 집사람하고 같이 가시지요 뭐, 제가 일용엄니한티 얘기 해 놓을게요.”

 

우리가 불교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절이든 절에 다녀야 한다. 부처님은 예전에 독학으로 불교를 창설하고 실천하셨지만 중생들은 독학으로는 불교를 배우기 어려우므로 불교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불교학교가 곧 절이다. 그런데 불교학교인 절은 일반 학제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그러나 사찰 불교대학에서는 불교의 기초교리부터 경전강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운영하며 불자들을 인도한다. 그리고 일반학교가 전국에 산재해 있듯이 사찰도 전국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어느 절에 가면 좋을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학교의 선택,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주거의 선택, 종교의 선택. 따라서 모든 일을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잘 선택해야 하는데, 이러한 최적 선택이 쉽지 않아 우리네 삶이 힘들 때가 많은가보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에는 임계판단력(critical literacy)라는 말까지 있다. 즉 모든 요소를 철저하게 고려, 최선의 선택을 하는 능력을 critical literacy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절의 선택은 임계판단력을 동원할 만큼 그리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네 생각엔 다음 몇 가지만 고려하면 충분할 것 같다. 첫째는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절에 가는 게 좋다. 대중교통으로 대략 1시간 내에 갈 수 있는 정도면 좋다. 교통이 좋으면 수시로 절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교대학이 있는 절에 가는 게 좋다. 그런 절에는 경전공부와 수행을 많이 하신 학승들이 계시므로 그 스님들로부터 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절 살림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절에 가는 게 좋다. 재무제표를 공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찰이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표이다. 넷째는 법보를 발행하는 절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법보는 스님들의 법문, 불교대학 커리큘럼, 신도들의 에세이, 기타 공지사항 등을 널리 알림으로써 불자들에게 올바른 신행생활의 길을 잘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불교에는 불법승(佛法僧) 삼보가 있다고 배웠다. 은 부처님으로 시아본사석가모니불은 현재 계시지 않지만 우리는 절에 모신 佛像을 통해 부처님의 정신을 간절히 구한다. 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이므로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면 불도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경전을 두고도 읽지 않으면 보배를 흙속에 버려둔 것과 같다. 은 스님들로서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 수행하는 전문 스승님들이다. 스님은 스승님에서 을 뺀 말이라는 말도 어디서 들었는데 스님의 역할로 보면 매우 합당한 존칭어인 것 같다.

 

그런데 삼보 중 불상, 서양종교에서 우상이라 폄하하는 불상이 서양의 알렉산더의 영향이라니 참 아이러니하지.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는 2017629일부터 930일까지 알렉산더 대왕이 만난 붓다전시가 있었는데 가보니 간다라미술 전시회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헬레니즘문화가 전파되면서 고대 그리스 신상 조각예술이 파키스탄 간다라에 전해져 불상 제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상은 알렉산더의 공헌이라는 것. 그런데 그 때 알렉산더가 삼보(三寶)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경전과 스님들을 유럽으로 초빙하여 유럽에 불교를 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늘의 인류문명은 동서양이 더 평화롭게 번창하지 않았을까? 당시 알렉산더에게는 아마 임계판단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2017.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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