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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제 눈에 안경을 찾아서

제 눈에 안경을 찾아서

아침에 10분정도 헤맸다. 안경이 보이지 않아서. 분명 어제 안경을 쓰고 집에 들어 왔는데 어디다 빼 놓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고 정직하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글도 한편 쓰고 했는데, 벌써 건망증 9단이 된 건가, 아니면 미약 치매가 온 건가? 한참을 이 구석 저 구석 두리번거리는데 노트북 뒤에 떨어져 숨어 있는 검은 테를 발견. 하하.

그런데 안경을 안 쓰고도 안경을 찾았네. 눈이 아직은 좋은 편인가 봐. 책 볼 때는 늘 안경을 빼 놓고 보니 굳이 안경이 없어도 되지 않나. 아참 거리에 나가면 멀리서 오는 사람을 잘 못 알아보니 그때는 안경이 필요하지. 그래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지. 그런데 요즘 와서는 책을 볼 때 특히 작은 글자를 볼 때는 다 초점 렌즈 안경이 필요하고 식품의약품 설명서 등 더 미세 글자를 볼 때는 손잡이 돋보기도 필요하지.

안경을 찾으니 돈을 한 20만원 쯤 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도 생각나고. 제 눈에 안경은 제 눈의 조건에 딱 맞는 안경, 아니면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충고의 말 같고,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은 이성을 선택할 때 상대의 좋은 점만 보여서 진중하게 결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익살 섞인 후회 감정으로 쓰는 말 같다.

말이 철학이다. 말 속에 진리가 들어 있다. 오늘 안경을 찾아 헤매다 안경을 찾는 바람에 너는 안경에 얽힌 우리 언어의 깊은 철학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제 눈에 안경, 눈의 콩깍지, 하하. 그래 너는 앞으로 제 눈에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 눈에 콩깍지는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안목을 더욱 길러야 한다. 안목이 명시하고, 안목이 진실하고, 안목이 평화로운 저 가을 하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2017.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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