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미술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이 만난 붓다”전을 관람했다. 전시장의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파키스탄에서 가져온 간다라 불상들이 유리 틀 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을 무덤덤하게 돌아보는데 한 지점에 이르자 ‘무불상시대’라는 설명이 눈에 띄었다. 불상이 없는 시대, 불교의 초기 500년간은 불상이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전후 설명문을 읽어보았다.
무불상시대
부처는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초월적 존재는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약 500년 동안은 부처의 형상을 볼 수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무불상 시대’이다. ‘무불상 시대’ 당시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부처 대신 그를 표현하는 여러 상징들이 존재하였는데, 열반을 상징하는 스투파를 비롯하여 부처의 발자국, 수레바퀴, 연꽃, 보리수, 터번, 우산 등이 그 예이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
그리스 신상문화는 인간만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조화, 통일, 균형에 기반 한 이상미의 탐구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그리스문화가 동방으로 진출하며 간다라 지역의 문화와 융합되어 인간의 모습을 한 부처 – 최초의 불상이 출현하게 되었다.
불상의 출현
인간의 모습을 한 첫 불상의 출현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미술에 큰 영양을 주었는데 간다라지역에서 발굴된 당시 불상들을 보면 구불거리는 머리, 깊게 패인 눈, 몸의 형태를 딴 옷의 주름 등 많은 부분이 그리스 신상과 닮아 있다.
이 내용이 그 전시의 핵심 같았다. 석가모니 열반이후 초기 500년간은 부처와 불도를 상징하는 탑이나 물건들만 있고 불상은 없었으나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에 따라 그리스 헬레니즘문화가 파키스탄의 간다라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인간 모양의 불상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신상 조각과 간다라의 불상 조각이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생존 시차(석가 BC624–BC544 VS 알렉산더 BC356-BC323)로 인해 후생인 알렉산더가 석가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으나 문화교류를 통하여 많은 불상들이 출현했고 이것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불교의 정신은 그리스에 전파되지 않았을까? 고대 그리스의 예술과 인도의 불교가 서양에서도 융합했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일찍이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뜬금없는 상념에 잠겨보았다. 2017. 9. 1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