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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저자 패러다임 독자 패러다임

저자 패러다임, 독자 패러다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 외벽에 있는 진부하지만 참신한 글귀다. 그런데 요즘 사람이 책을, 책이 사람을 만드는 일은 물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자동화되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전혀 자동화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책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자의 열정적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또 책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자의 열정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방향으로 보나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쪽은 없다. 그래서 또 젊은이들로부터 열정 같은 소리 하지 마라는 핀잔을 들을지는 모르지만. 얼마 전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는 영화 광고를 서울버스에 붙이고 다녔는데, 이젠 그게 안 보이더라고. 하하. 그런데 세월이 가면 그 진부한 선배들의 충고가 후배들의 충고용 레퍼토리로 바뀌게 될 테지. 하하.

서론이 너무 길었네. 이제 본론에 들어가 먼저 저자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좀 건방질 걸 같아 겸손하게 말씀 드려야겠지. 누구한테 말씀을 드릴까 생각하다 먼저 너 자신에게 말씀을 드리는 게 순서일 것 같네. 너도 책을 20여권 썼기에, 책을 쓰며 그동안 겪은 실수와 시행착오, 표현의 미숙 등 생각하면 지적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거든. 하하. 그래서 베스트셀러는 한권도 못 만들었지. 이를 반성하며 다음과 같이 원론적인 충고를 해야겠네.

우선 책을 쓰는 사람은 먼저 서양 계몽주의시대 영국의 대 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말한 4대 우상을 버려야겠지. 인터넷에서 베이컨을 검색하면 슈퍼에서 파는 먹는 베이컨이 많이 나오고, 그 다음 백과사전이 나오는데, 백과사전에 나오는 베이컨 조항의 4대 우상에 대한 설명은 그리 명쾌해 보이지는 않아. 네가 알고 있는 4대 우상, 먼저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갖는 오류, ‘동굴의 우상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질적 편견, ‘시장의 우상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친구 따라 강남가기, ‘극장의 우상은 연구방법에서 가설하는 프레임워크의 오류 등이라고 알고 있지. 여기에는 색안경을 쓰고 대상을 보면 안 된다는 추상적인 교훈도 다수 포함되어 있지. 그리고 보릿고개 넘던 옛날, 새마을 운동하던 옛날, 그 시절의 그 진부한 사고방식과 편견을 과감히 버리고, 곡학아세, 혹세무민하는 동굴 속 종교도 버리고,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생각을 바탕에 깔아야 한다, 이 말씀 것 같아.

이거 쉬운 것 같지만 지키기는 참 어렵지. 써 놓고 나면 어딘가 또 오류가 나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예전에 책을 안 쓰신 교수들은 너희더러 함부로 책 내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셨는데. 그러면서 본인들도 책을 안 내셨지. 그런데 그건 또 좀 아닌 것 같지. 어떻게든 써 놓아야 독자들이 비평하고 오류를 수정해가면서 학문과 사상이 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지. 책을 안 쓴 교수들은 지나고 나면 그 분들의 학문적 공헌이 무언지를 알 수가 없거든. 그래서 책을 쓰되 위의 4대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이 말이네. 세월은 가고 저자들도 늙어가도 생각만은 항상 새롭게 하여 세월과 함께 퇴행하지 않게 하는 것, 이런 태도가 저자에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네. 그리고 글을 안 쓰기보다 한두 줄이라도 참신하게 쓰려고 시도하는 것, 책을 안 내려고 단념하기보다, 책을 내려고 애써보는 것, 그것이 더 좋은 저자의 태도가 아닐까 싶네.

그럼 독자는 어떻게 하면 되지. 독자는 위에서 말한 저자가 지켜야 할 일들을 똑 같이 지키면서 책을 읽으면 될 것 같지. 그리고 책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 오류를 발견하고, 본인들의 생각을 보태어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독자가 어느새 저자가 될 것이고. 하하. 그게 역사 발전의 순리 아닐까? 최근 어느 교수의 신문칼럼 기고문을 한 독자가 오려가지고 빨간 펜으로 수정하여 그 교수에게 보내 왔다는데, 그래서 그 교수가 SNS에 올렸던데, 주로 수동태 표현을 능동태 표현으로 고쳤던데, 그런 지엽적인 표현의 문제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살피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단초로 삼는 것이 더 발전적 독자의 태도일 것 같지. 하기야 우리의 어문교육이 영어교육의 영향을 받아 수동표현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수동이 논리상의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완곡하고 겸손한 표현이 될 수 있으므로 능동과 수동을 적절히 섞는 것이 이 시대 글쓰기의 정석이 아닐까 싶네. 아무튼 저자든 독자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서 오늘 이렇게 사설시조를 썼네. 하하. 2017.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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