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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새치기

새치기

2017911040분 송파노인복지관에서 식권을 사가지고 복도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다가 1130분 배식시간에 맞추어 줄을 섰어요. 너의 앞에 줄이 좀 길었고 너는 줄 제일 끝에 섰지요. 근데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오시더니 아무런 양해말씀도 없이 네 앞으로 은근슬쩍 뭉텅이로 끼어들었어요.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다가 계속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새치를 하시기에, 에이 좀 있다 먹지 뭐, 하고 그냥 현관 앞으로 나왔어요. 포도넝쿨 앞 벤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네요. 너는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분들이 평생 살아온 행동습관일 테니까요. 하하. 그런데 좀 신사적이지는 않죠? 신사숙녀가 아니라서 그럴까요? 예전 우리 고유 예절도 아닌 것 같고요. 아아, 장유유서(長幼有序)인가보네요. 아무래도 제가 80노인들보다는 나이가 어리니까. 하하.

하지만 너는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어르신들의 자녀분들이 지금 한창 이 나라의 무질서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요. 연령으로 보아서는 그럴 거 같아요. 父傳子傳, 母傳子傳, 父傳女傳, 母傳女傳이 맞는 말처럼 느껴지네요. 맞지 않으면 좋겠는데요, 부모는 저래도 자녀들은 예의와 질서를 좀 잘 지켰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윤리교육은 저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무너진 것 같습니다.

오늘 오전에 본인 이름도 안 밝히고 수업 교재에 대하여 문자로 문의를 해온 신입 학생이 있었습니다. 문자를 보고 기분은 별로였지만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요즘 평생학생들 예의를 벗어난 행태는 아마도 전부 그들의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너무 쩨쩨하게 과민방응 하지 말라고요? 아아 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너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군요. 너의 아이들만은 그러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네네. 2017.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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