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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서울과 인도

서울과 인도

인간은 누구나 하늘 아래, 땅위에 살고 있다. 그 곳이 아니면 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땅을 밟지 않고 누가 살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의 땅에서 왔기에 어머니의 땅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비행기를 타면 불안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늘은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지만 그리 안전한 곳은 아니다. 하늘에 떠 있으면 우리는 불안하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를 가고, 부산을 가고 미국을 갈 때도 우리 촌놈들은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하늘은 우리 삶의 필수 환경이다. 하늘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하늘은 우리에게 숨 쉴 틈을 준다. 숨을 쉰다는 것은 하늘 기운을 받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늘기운(天氣), 즉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다. 불교의 무간지옥(無間地獄)도 거기서 나온 지옥이론이 아닌가 싶다. 간격이 없는 것이 무간無間인데 간격이 없으면 공기가 있을 수 없다. 지옥은 땅 속의 옥이다. 땅속에는 간격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죽어 땅 속에 묻히면 무간지옥에 가는 것이다. 옛날 왕의 무덤을 공간으로 만든 것은 무간지옥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땅 속에도 공간이 있으면 천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 더 좋은 방법은 불교의 장례의식대로 화장하여 땅에 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설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땅에 살면서 가끔 경이로운 지명을 발견한다. 내가 지리에 취미는 있지만 전공은 아닌데도 땅이름을 볼 때마다 그 의미심장함에 놀란다. 우선 서울의 지명은 서울인데 서울이 한자 이름이 아니라는 게 놀랍다. 한자를 전용하던 시기에는 서울을 한양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서울에 더 익숙해 있다. 지금 한양을 쓰는 곳은 한양대학교뿐이다. 더 있다면 아마 한양 부동산 정도? 이 땅에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서울이라는 말이 한양이라는 말보다 더 많이 쓰였을 것이다. 그 후 한양은 한자말이니 사대부들이 썼을 것이고, 서울은 우리말이니 민간인들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금강경강해>에 보면 서울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김용옥, 금강경강해, 통나무. 106-107). 서울은 석가가 태어난 코살라왕국의 수도 슈라바스티에서 왔는데, 현장법사가 슈라바스티를 실라벌(室羅筏)이라고 한자로 음역하였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 지명이 서라벌(徐羅伐), 신라(新羅)로 되었다가 결국 서울로 바뀌어 완성된 지명이라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이 부처님의 땅 인도의 지명에서 유래 했다니, 그리고 室羅筏, 徐羅伐, 新羅 등의 한자를 버리고 순 우리말로 서울이라고 했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어차피 실라벌(室羅筏)이나 서라벌(徐羅伐) 등은 의미를 택한 것이 아니라 슈라바스티라는 발음을 택한 것이니 세종이후 어린 백성이 이를 한자로 쓸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서울은 깨달음의 수도다. 석가가 깨달은 곳은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라 하나 설법은 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것은 깨달음의 수도에 사는 것이니 우리는 날마다 석가모니처럼 깨닫고 살아야 한다. 또한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니 대한민국은 날마다 깨달아야 한다. 수도를 충남 조치원으로 일부 옮긴 것은 그래서 모순 같다. 세종시라는 좋은 이름을 붙였지만 세종대왕이 그곳에 수도를 정하라고 한 적은 없다. 지금 공무원들이 얼마나 불편한가.

한편 서울의 젖줄인 한강을 漢江이하고 한 것에 다소 불만을 느낀다. 중국 한()나라의 강도 아닌데 왜 한강(漢江)이라 하는가? 차라리 크고 넓다는 순 우리말 이나 大韓民國을 써서 한강, 또는 韓江이라 하면 모를까, 우리의 강에 한나라 자는 좀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아마 한이 없겠지만 국토지리학자들이 지명을 연구할 때, 그 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유래를 면밀히 조사하고 분석해야 하겠다. 그래서 지명학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지명 연구자는 많지 않다. 이것도 돈벌이가 안 되어서일까? (화계법보 2017.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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