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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헐버트와 한글

헐버트에 관한 강의를 듣고

너는 한글박물관 도서관에서 주최한 한글날 기념 강좌를 들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대한제국에 와서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한 미국인 헐버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음 백과사전에는 헐버트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헐버트 Homer Bezaleel Hulbert(1863~1949)

1886년 소학교 교사로 초청을 받고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출간하고 1896년에는 구전으로만 전해 오던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채보하여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1897년 한성사범학교 책임자가 되며 대한 제국 교육 고문이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자주 독립을 주장하여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07년 고종에게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 평화 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하고, 한국 대표단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해 <회의시보>에 대표단의 호소문을 싣게 하는 등 국권 회복 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1949년 국빈으로 초대를 받고 내한하였으나 병사하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강사는 30여 년 간 헐버트에 관한 자료를 조사, 연구해온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라 했다. 너는 인터넷으로 사전에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 직원에게 요청하여 현장에서 수강등록을 했다. 강의 자료는 <사민필지> 서문 복사자료 3매, 통상적으로 다른 강연에서 배부하는 소위 강의 자료는 없었다.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동안 열띤 강의가 진행되었다. 헐버트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근대 교육발전과 자주 독립에 기여한 업적들을 증거자료와 함께 소개했다. 강사는 국내외를 돌며 헐버트가 저술한 책과 논문, 신문기사들을 조사, 수집하고 그들 자료에 근거하여 설명을 하고 있었다. 전직이 학자나 대학교수가 아니라 금융회사 간부였다는데, 어느 역사학자 못지않게 인물 전기를 연구한 것 같았다. 지은 책으로는 <파란 눈의 한국 혼>(2010),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2016)가 있으며 특히 후자에 강의 내용이 다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아, 그렇군, 강의 자료 유인물을 준비하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너는 성북구 훈민정음 축제에서 느낀 허탈한 마음을 한글박물관 한글누리 책사랑 강좌, “한글, 헐버트를 만나다”에서 보완할 수 있어 오늘의 발품이 헛되지 않음을 느꼈다. 다만 이번 특강에 옥에 티가 있다면, 어떤 인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가 연구하는 대상에 대하여 최고의 미사여구로 묘사하고 싶어 한다는 17, 18세기 이탈리아 역사철학자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의 말을 오늘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훌륭한 연구대상 인물에 대하여 감탄하고 존경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너무 자신의 감정을 개진해 자료를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연구의 객관성을 엷게 할 소지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아무튼 오늘 강의는 유익했다. 근대 한글의 역사와 정치외교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인 선교사, 교육자, 역사가, 한글학자로 우리에게 평생을 바친, 한국 땅에 고이 잠든 헐버트 박사를 반드시 심층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국어학자들이 훈민정음에 대하여 연구를 해왔지만, 근래 일본인 노미 히데키도 <한글의 탄생, ‘문자’라는 기적>(2011)이라는 책에서 한글을 극찬했고, 세계 언어학계에서도 세종대왕을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인정 했지만, 아직 훈민정음과 한글, 그리고 국어에 대하여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우선 훈민정음 원본을 복사하여 전 국민에게 배포하라(교보에서 복제한 것은 너무 비싸니 저렴하고 간편하게 복사 배포하면 좋지, 백성들이 이용하는 데는 원본의 서지학적 특징은 별로 중요하지 않지, 원본의 내용이 중요한 거지). 학생들은 훈민정음을 몇 번이고 사경하라(훈민정음은 우리말과 우리글의 경전이다). 학자들은 옛 고전들을 아름다운 한글로 다시 풀어 보급하라. 한글을 전용하되 국어공부에는 한자의 어원을 함께 익혀야 쉽다. 그리고 동양학 언어로의 한자와 한문에 대하여 벽을 쌓지 말아야 한다. 영어를 배우듯이 한어(漢語), 독일어, 에스파냐어, 일본어 등 외국어도 배워야 세계인으로 잘 살 수 있다. 네가 너무 흥분했나보다. 아무튼 세계는 넓고, 욕심은 많고, 그래서 할 일은 많다. 2016. 10.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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