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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훈민정음 축제

훈민정음 축제

길상사에서 내려와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그런데 휴관과 출입금지 안내판이 나그네의 입장을 막는다. 아니 훈민정음 축제라고 했는데, 그럼 어디서 하지? 거리 현수막에 보니 성북구 구립 미술관이라 되어 있어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도 축제준비가 덜 되어 있는 듯, 미술관 입구에 작업인부들만 분주하게 천막을 해체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2층 전시장에 도우미 2명이 서 있다. 전시장은 규모가 작고 초리하기까지 했다. 이걸 훈민정음 축제라고 선전했나 싶을 정도로 실망감이 들었다. 사진만 몇 장 찍고 바로 나왔다.

축제예산이 부족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콘텐츠도 없이 몇 가지 한글자모 쿠션 소품 좀 갖다 놓고 훈민정음 축제라니, 원 나 참. 콘텐츠라고는 작년에 교보문고에서 복사한 훈민정음 해례본 한권 뿐, 그것도 주마간산으로 보아야 한다. 너는 작년에 25만원을 주고 그 복제 본을 사서 소유하고 있다. 축제를 할 거면 복사본이라도 좀 저렴하게 만들어서 관람객들에게 복사비만 받고 나누어 주든지, 학생과 시민들이 훈민정음 한 권씩을 가지고 집에서 철저하게 공부하도록 뭔가 좀 도움을 주어야 축제의 의미가 있을 텐데, 강의 몇 개로 축제를 다하려 했나.

내려오면서 보니 도로 한편을 막고 시장을 차려놓았다. 축제 개막식을 하는지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그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도 저렇게 구태의연하게 내빈 소개를 하나보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에 들어가 보았다. 상인들이 먹거리와 입을 거리들을 전시해 놓고 호객을 하고 있다. 여느 시장과 다르지 않는 모습, 아, 축제의 목적이 이런 거였구나, 훈민정음 축제는 여벌이고, 그러니 간송미술관도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겠지. 씁쓸하다.

어느 덧 낮 12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6천 원 하는 청국장을 먹고 한성대역에서 사당행 전철을 탔다. 처음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곧장 집으로 오려했다. 그런데 너무 허전했다. 며칠 전 한글박물관에서 온 문자가 생각났다. 오후 2시에 한글박물관에서 헐버트 전문가가 강의를 한다는데, 그 강의나 듣고 가야지, 생각하며 이촌역에서 내려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보무당당하게 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2016. 10. 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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