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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마늘 한 접, 양파 한 자루

마늘 한 접, 양파 한 자루

우리 단군신화에는 쑥과 마늘이 등장한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일정기간 굴에서 기다리니 웅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그 후 1908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한참 늦지만 러시아의 문호 도스도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에는 양파 한 줄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할머니가 지옥에 떨어지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서 그 할머니의 선행을 검색해보니 다른 사람에게 양파 한 뿌리를 뽑아 준 실적이 있어 그 양파 한 뿌리를 붙잡고 지옥에서 올라오도록 도와주려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에 덩달아 매달려 올라오는 귀신들을 할머니가 발로 차자 양파 줄기가 끊어져버려 할머니는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때 들은 이야기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인간사회의 기본 윤리다. 착함을 권하고 악함을 징벌하는, 그래서 상과 벌이 생겼다. 인간의 상벌은 실정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크게 생각하면 자연에도 상벌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도록 유도해 왔는데, 오늘날에는 악이 큰 규모로 고개를 내밀고 있어 문제다.

자연은 공평하므로 악에게도 과학을 내려 준다. 누구에게나 무기를 만들도록 허용하는 자연, 어찌 보면 모순 같다. 그러나 자연에는 선악이 공존한다. 먹이사슬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이 다 착한 것 같아도 생태계는 그렇지 않다. 서로 잡아먹고 사는 생태계. 그런데 동종끼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대체적인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동식물을 잡아먹지만 인간끼리는 잡아먹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은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다. 그래서인지 문학이나 종교에서는 지옥과 천국을 만들었다.

얼마 전 매형이 누나가 살아계실 때 함께 농사지은 마늘과 양파를 많이 주셨다. 마늘은 반접이 넘고 양파는 거의 한 자루다. 홀로 사는 나로서는 이들을 처리하기 어려워 아들 며느리에게 마늘과 양파를 패스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누이와 매형은 절대로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양파가 그 얼마며, 마늘이 그 얼마인가. 그동안 베푼 선행은 또 그 얼마인가? 그 튼튼한 양파줄기와 마늘 줄기를 잘 붙잡으면 지옥에 떨어질 염려는 없겠지. 그래서 나도 이제 선행을 좀 해야겠다. 2016. 8. 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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