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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처서

처서에 기체후 일양만강(氣體候 一樣萬康)하신지요?

立秋, 處暑, 秋分, 白露, 寒露, 霜降. 선조들이 정한 가을의 절기다. 오늘 8월 23일(화). 처서라는데 오늘도 폭염이다. 지금 서울은 섭씨 35도. 이제 과거에 정해둔 절기의 의미가 맞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기상청의 일기 예보는 자주 빗나간다. 이는 그 조직의 구조 기술적 문제도 있겠지만 이상기후라는 돌발 요인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입추는 가을에 들어서는 절기이고, 처서는 더위가 물러가는 절기라는데 이제 그 뜻이 실제와 맞지 않으니 절기를 좀 손 봐야 할까? 아니 그냥 역사적인 의미로 놔두는 게 나을까? 이 문제는 한 한 세기 정도 후에 고민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새로운 세대들은 태음력의 고전적 절기와 그 의미를 배우지 않아 잘 알지 못하니까.

절기 따라 먹는 음식은 너무들 잘 안다고요? 아, 초복, 중복, 말복 삼복에 먹는 보양식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삼복은 절기에 들어가지 않고, 보양식을 먹기 위한 명분용 명칭인 것 같아요. 더워서 개가 엎드려 있으니까, 엎드릴 복(伏)자를 삼세 번 넣어 놓고 개를 3번 잡아먹는다, 이 말인지? 아니면 사람이 기운이 빠져 엎드려 있으니 보신을 해야 한다는 뜻 같기도 하고. 아무튼 삼복에는 개가 수난을 당한다.. 이건 다 선배들이 전수한 것이기에 선배들의 책임으로 돌리자.

각설하고, 그런데 오늘 처서(處暑)라는 단어의 한자를 보고 좀 놀랐다. 처할 處에 더울 暑자를 쓰니 더위에 처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처에는 분별한다는 뜻도 있으니 이제 더위를 분별하여 한고비 넘기고 가을을 시작한다, 이렇게 해석해야 하나? 이건 좀 억지스러운 것 같다.

처서는 더위에 처해 있는 것이니 예전에도 처서 때 더위는 다 물러가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처서라고 했나보다. 그러니 지금 처서인데 덥다고, 절기가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처서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한데서 오는 착오가 아닐지? 처녀도 이 處자를 쓰는데, 여자로 태어났어도 어릴 때는 그 성별의 의미를 모르다가 사춘기를 넘어서면 진정한 여성에 處하게 되니 처녀는 이제 정말 여성이라는 말이 아닐까? 처서는 더위의 절정에 이르렀으니 더위는 이제 곧 물러날 것이고, 처녀는 여성으로서의 절정에 이르렀으니 곧 시집을 갈 것이고. 이건 지나친 상상일까?

곧 환절기가 올 것이다. 머지않아 결실의 계절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다가올 환절기를 맞이하여 21세기 현생 인류 모두의 마음과 몸이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오늘따라 예전에 편지에 쓰던 상투적인 인사말이 새삼 그립다.

“아버지 전 상서, 환절기라 일기 고르지 못 하온데 기체후 일양만강(氣體候 一樣萬康)하신지요?” 예전엔 뜻도 모르고 이 말을 썼었다. 그 뜻을 지금에야 새겨본다. “아버지께 올리는 글, 환절기라 날씨 변화가 심한데, 아버지 마음과 몸이 줄곧 건강하신지요?” 2016. 8.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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