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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버리고 떠나기

버리고 떠나기

버리고 떠나기. 내가 수필 제목으로 생각해냈는데, 알고 보니 법정스님이 쓴 책의 제목이었다. 교보에서 검색한 바 그 책은 이미 절판되어 시중에는 없었다. 아마 어딘가 도서관에는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 책은 내가 거의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빠진 게 있네. 그래서 그 책을 꼭 구해 읽어보아야겠다. 그리고 그 제목을 나대로 한 번 써먹어보고 싶다.

불교의 기본 사상은 공사상이다. 모든 것을 비워내야 한다. 그래서 법정스님도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아름다운 마무리>, <홀로 사는 즐거움> 등 공사상을 중심으로 글을 쓰며 마음을 수양하셨나 보다. 그리고 돌아가시면서는 본인의 모든 저서를 절판하라고 까지 당부했다고 한다. 본인이 쓴 글 까지도 다 버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좀 너무 심했지. 그게 어디 본인의 뜻대로 되는 일인가? 이미 출판되어 다 퍼져있는데. 오히려 자신의 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불교사찰들은 모든 것을 비워내기보다는 법인을 만들어 재산을 축적하면서 오히려 부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가사장삼도 200만원이 넘는다 하고, 대대적인 대리석 공사를 하고. 현대의 한국불교는 불교사상과 어긋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교 포교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돈이 필요할 것이다. 불교대학도 경영해야 하고, 불교방송국도 경영해야 하고, 포교당도 있어야 하고, 해외포교도 해야 하니 돈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찰에 들어오는 돈을 어떻게, 어떤 선업에 잘 쓰는가는 사찰 스스로 좀 헤아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법정스님 책 때문에 글의 방향이 좀 불교적으로 흘렀다. 이제 나대로 버리고 떠나기를 명상해본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애지중지 모아놓은 재산, 빌딩, 아파트, 금은보석, 책, 상패와 메달, 이 모두를 살아생전에 버린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누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자연히 말없이 떠나게 되므로 모든 걸 버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왕에 버릴 거 살아서 버리는 게 생색도 나고 더 나을 것 같다. 일상 속에서도 오래된 잡동사니는 과감히 버리고 방 정리를 새롭게 하여 쓸고 닦으면 훨씬 마음이 상쾌해진다. 청소의 기본은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를 하고나면 마음이 허전하던가? 생기 있는 삶이란 생활의 주변을 청소하고 항상 새롭고 향기로운 마음을 담아 날마다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신진대사도 잘 먹은 다음 양분만 취하고 찌꺼기는 버려야하듯이. 여기서 하나의 법칙이 나온다. 정리의 제1법칙은 버리는 것이다.

송파도서관에 가서 법정스님의 책, <버리고 떠나기>를 빌려왔다. 이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실제로는 그 책 속의 한 꼭지 수필이었다. 법정스님의 글은 어느 책이든 어렵지 않아 내 마음에 한 줄기 맑은 향기를 실어다 준다.

그런데 하나 기분 나쁜 것은 이어폰을 끼고 있는 도서관 대출 담당자의 성의 없는 표정이었다. 회원카드의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소리도 발음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너무 무성의하게 발성했다. 도서관에 간 길에 점심을 때우려고 지하 식당에서 4천 원짜리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식권에 번호가 매겨져 있고 음식이 나올 때마다 전광판에 번호가 떴다. 그러면서 120번 고객님, 하고 녹음된 음성이 나왔다. 해당 번호의 손님이 바로 나타나지 않자 식당 아주머니가 고객님은 빼고 반말로 크게 불러댔다. 120번, 120번, 120번. 음식은 값이 싸서 그런지 밥이 푸석푸석하여 햇반 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이 도서관은 정말 서비스 제로다. 나는 왜 도서관에만 가면 기분이 안 좋아질까? 이제 그 도서관도 버려야겠다. 새로운 도서관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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