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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헬리콥터 부모

헬리콥터 부모

헬리콥터 부모는 출입금지,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내건 스톱사인이란다. 헬리콥터 부모가 뭔가 했더니 부모가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관찰, 보호하는 부모라고 했다. 자녀가 도시락을 안 가지고 가면 갖다 주고, 준비물을 안가지고 가도 또 갖다 주는 부모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정서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용어가 또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아, 마마보이. 나는 마마보이가 바보처럼 된 걸 대학에서도 더러 보았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보호해주는 게 당연하다.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올바른 사회생활로 안내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부모를 보호자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자립심도 함께 길러 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부모의 책임을 잊고 내 자녀들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한다. 미국의 부모들은 안 그런 줄 알았더니 미국도 이제 한국의 부모들을 닮아 가는가보다. 한국이 선진국이라서 그럴까? 하하.

사실 나도 어려서는 부모님의 보호를 너무 많이 받았다. 성장해서까지도 어머니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걱정하시고 공부 말고는 모든 것을 다 해주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철이 일찍 들어 자립심이 중학생 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집이 가난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과잉보호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가 어머니를 조용히 나무라기도 했다. 다 큰 아들, 세계 어딘들 못가겠어요. 이제 좀 놓아주세요, 엄마.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한편 지나고 보니 어머니의 그 애틋한 마음을 이제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나도 자녀교육을 잘 한 것 같지는 않다. 과잉보호는 안 했지만 너무 방관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보호했지만 중학교 이상 올라가서는 알아서 잘하라는 식으로 놓아두었다.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를 대 본적이 별로 없다. 성적을 가지고 나무라본 적도 없다. 아버지로써 엄격한 윤리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잘하면 따라서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교육방침이라면 방침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립을 하기 까지 매우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로써 지도를 좀 확실히 했더라면 저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혼자 울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좀 걸렸지만 아들들이 이제 효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자립, 자립심을 가지고 제 할 일을 제가 알아서 해나가게 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정교육인 것 같다. 자녀들에 대한 간섭이나 보호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일까? 2016. 8.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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