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산골 11남매

산골 11남매

울산을 출발하여 저녁 9시 30분 대전에 도착했다. 매형이 기다리고 계셨다. 누이 없는 매형이 보기에 안쓰럽다.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더워서 웃옷을 벗은 터라 근육이 더 빠져 보인다. 예전 한창 때 중노동꾼의 그 강건한 근육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주름져 힘없이 늘어져 있다.

산에 갔다 온 포도를 꺼내놓고 매실주를 한잔 씩 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결국 우리는 이제 생을 정리하는 세대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인생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정이 넘어서 잠이 들었다. 지나가는 차 소리, 모기소리도 700킬로미터를 달린 나그네의 수면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깨어보니 아침 6시, 딸그락 소리가 들렸다. 매형이 벌써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다. 나보고 누이 책 중에서 가져갈 책을 골라 챙기라고 했다. 나머지는 버린다고. 일단 매형 표 아침밥을 잘 먹고는 책을 골랐다. 육필원고는 고르지 않고 그대로 박스 채 차에 실었다. 차의 뒷좌석이 책으로 꽉 찼다. 매형과 누나가 농사지은 양파와 마늘도 한 자루씩 싣고, 담아 놓은 매실 청도 큰 병 한 병, 책과 잉여 농산물을 차에 가득 싣고 아침 7시 50분 대전을 출발했다.

차에서 다시 또 만감이 교차한다. 결국 형제자매간에 나 하나 남았다. 이제 나의 책임이 무겁다. 우리 가족사를 정리할 책임이 나에게 와 있음을 느끼니 마음이 급해진다. 어떻게 정리를 좀 해야 하나. 예전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 형제자매는 통산 11남매라고 했다. 그 중에 1927년생 제일 큰 누이, 그리고 1945년생 둘째 누이, 1952년 생 막내 나만 살아남았다 한다. 그 중간의 형들은 다 실패를 하셨다고 하니 정말 고난의 가족사다. 그래서 제목을 일단 잠정적으로 “산골 11남매”로 정했다. 3남매만은 아니었기에. 그런데 먼저 간 형들에 대해서는 쓸 자료가 없으니 그냥 제목에만 달아놓을 수밖에. 그래도 우리는 11남매였었다고.

우리의 가족사는 소설로 써야 할 것 같다. 박경리의 토지 만은못해도 산에서 나고 자란 산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구상하여 시간을 두고. 비록 한 집안의 이야기지만 그 소설엔 인생의 진실을 담아야 하겠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읽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겠기에, 그래서 그 시대를 이해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세대에게도 카타르시스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겠기에, 시시콜콜한 가족의 역사를 넘어서는 그 어떤 아름답고 참된 인간적 역할을 해야 하겠기에 나의 책임은 정말 무겁다. 그러나 나에게 스트레스는 없다. 이렇게 쓰다보면 쓰지 않겠는가? 2016년 8월 6일 오전 나의 도서관에 도착했다. 2016. 8. 6(토).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夏 安居와 夏 安行  (0) 2016.08.07
손빨래도 좋다  (0) 2016.08.07
울산 태화강 대숲공원  (0) 2016.08.06
혼자 회를 먹다  (0) 2016.08.06
나에게 보내는 편지  (0) 201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