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도 좋다.
세탁기를 돌리니 갑자기 웬 양철 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껐다가 다시 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고장이 났나보다. 땀에 젖은 옷가지들을 빨아야 하는데. 좀 난감했다. 그러나 이내 옛 경험을 생각하고 손빨래를 하기로 했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는 당연히 손빨래를 했었다. 추운 겨울에도 개울가에 가서 얼음장을 깨고 빨래하던 어머니와 누나.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비누질을 하고 빨래판에 주물주물 치대면서 판판한 돌판 위해 세탁물을 놓고 빨래방망이로 두들겨 땟물을 빼던 그 농경사회의 세탁문화를 나는 좀 안다.
일단 세탁물을 물에 담갔다. 큰 고무 다라가 없어 아이들이 스키장에서 미끄럼 탈 때 쓰던 파란 플라스틱 용기를 활용했다. 물을 받고 물비누를 풀고, 다시 세탁비누를 칠하여 예전방식으로 주물럭주물럭, 하다가 문득 고기요리에도 주물럭이라는 게 있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더러운 물을 비워가며, 다우니 방향제를 넣고 빨래 물이 맑은 물이 될 때까지 헹궈냈다. 손운동, 팔운동, 다리운동, 두뇌운동이 다 되는 듯, 물을 만지니 이 더위에 시원한 느낌까지 들었다. 손빨래를 하니 더위에도 덥지가 않네. 그래서 열대야에도 물 열대야를 퍼 부우면 된다는 예전 어느 한국방송 앵커의 농담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인터넷에, 옛날 사람들은 더운데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문구가 올라온 걸 살짝 보았다. 그러나 옛날에도 다 사는 방법이 있었다. 일단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면 간담이 서늘해지니 인스턴트 피서가 되었고, 동네마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다 있었으니, 그 그늘에서 부채도사가 되어 낮잠을 자기도 했다.
더위도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날씨가 계속 선선하기만 하면 농사가 안 된다. 특히 벼농사는 아열대나 온대몬순기후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더울 때는 더워야 하고 추울 때는 추워야 하는 자연의 진리, 그 자연의 법칙에 인간이 적응하여 살아왔다. 자연을 정복한다는 말에는 좀 모순이 있다. 히말라야를 겨우 올라가 보고 정복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에 대한 모독이다. 히말라야를 정복했다면 거기서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위험한 곳에 오르내리다가 죽기도 한다.
내 생각에 인간은 자연을 절대 정복할 수 없을 것 같다. 과학자들이 자연의 법칙을 조심씩 깨우쳐서 생활에 편리를 도모할 뿐이지. 과학문명이 발달하여 좋긴 참 좋다. 그러나 과학도 다 자연의 법칙 안에 존재한다. 지구온난화는 자연의 법칙을 위배해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며칠 전 지나가는 초등학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지구가 멸망할 것 같아.”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날 인간은 멸할 것이다. 인간도 자연이기에. 빨래를 하다가 이 더위에 별생각을 다 했네. 2016. 8.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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