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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夏 安居와 夏 安行

夏 安居와 夏 安行

학자들이 여름에 할 일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집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스님들은 수도를 위해 하안거를 많이 한다. 특히 선불교에서는 화두를 가지고 방에 틀어박혀 고행 아닌 고행을 한다. 자유를 속박하면 사색이 잘 되는지, 예로부터 절에서는 그런 방식을 선택했다. 하안거 동안(대체로 음력 사월 중순부터 칠월 중순까지 삼 개월 간)에는 스님들을 만나기 어렵다. 오늘이 음력 7월 5일이니 스님들은 지금도 선방에서 고행 정진 중에 있을 것 같다. 아직 한 열흘 남았네.

그런데 나는 그런 참선은 체질에 안 맞는다. 여행을 안 가도 주변을 좀 돌아다녀야한다. 돌아다니면 눈에 보이는 게 많으므로 더 많은 사례연구를 할 수 있다. 방안에만 있으면 사례연구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면면은 다 생활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눈을 감고 면벽하고 앉아 있으면 방귀만 나오지 눈에 뵈는 게 없지 않을까? 물론 심안이 있다고 하니 그 말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직 심안이 좀 약한 듯.

여행을 하다가 절에 들러보면 하안거라 스님이 눈에 띄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안거를 수행하는 건물 주변은 외인 출입 금지 경고문구가 있어서 삼엄하기까지 하다. 그런 방법도 정신통일에 좋은 공부방법이겠지만 내 체질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중 될 팔자라는데 중이 되지 못했나보다. 그런데 안거 그 기간이 끝나면 스님들도 잘 돌아다닌다. 요즘은 외국여행도 많이 다닌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기도 하고. 스님들도 학생들이니 글로벌 견문을 넓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동남해안 어느 절에 가서 느낀 바, 우리나라 사찰은 대중에게 불교적 정신을 가르치기보다는 기복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곳곳에 복전 함이 있고, 대중을 유혹하는 현수막, 황금돼지 등 사인물들이 경내에 가득했다. 한마디로 복을 받으려면 시주를 하라는 의미 같았다. 이와 같은 상업적 마케팅은 불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이해하고 그 분을 벤치마킹하여 자신도 깨달아 세상을 참되게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종교다. 석가모니를 신으로 모시라는 종교는 아니라고 들었다. 그런데 부처님께 빌고 기도하면 복을 받는다니, 이런 방식은 다 불교의 상업화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 좀 서글퍼졌다.

절에 가면 누구든지 스님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경전을 공부하고, 경전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러한 불교의 평생교육에 비용이 들어간다면 학생인 중생이 기꺼이 교육비를 부담하고, 뭐 이렇게 좀 되어야 불교의 본질 구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이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니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일까?

사찰은 회사가 아니라 불교를 가르치는 학교다. 불교에 가르칠 교敎자가 들어 있다. 스님은 스승님에서 ‘승’자가 빠진 단어라고도 한다. 그래서 스님은 스승이요, 중생은 학생이다. 그런데 그런 행불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궁행躬行을 위해 여행을 더 좋아한다. 이를 夏 安行이라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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