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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혼자 회를 먹다

혼자 회를 먹다.

혼자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하지 않아 화장실도 가지 않고 대변항을 떠났다. 대변, 좀 소식이 올 것도 같은데 참을 만은 했다. 오후 1시 30분 뱃속에서 점심을 기다린다는 기별이 왔다. 다시 차를 몰았다. 동해남부 이곳은 내가 30년 전에 좀 놀던 물이다. 고리원자력에 6년간(1979-1984) 근무하면서 이곳 기장, 일광, 칠암, 임랑, 월래는 나에게 익숙한 동네였다. 그런데 3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 해변의 지형지물을 제외하면 인문지리는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다.

옛날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내가 처음 고리에 부임해 왔을 때 어떤 분이 월래초등학교 교사를 중매해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인연이 아니었었다. 그래서 이별을 고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나에겐 아무런 죄가 없었지. 또 자연보호활동을 하던 어느 토요일, 우리 팀은 집게와 포대자루를 들고 임랑 해수욕장에서 쓰레기를 주웠었다. 그런데 감독부장이 자, 이제 그만들 하고 퇴근하십시다, 하자 직원들은 쓰레기 자루를 아무데나 던져놓고 뿔뿔이 자리를 떴다. 회사버스는 그 순간 떠나버렸다. 남은 직원들은 화가 나서 영업용 버스를 타고 가고, 나도 덩달아 버스를 타고 해운대 에이 아이디 아파트 306동 105호로 퇴근을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이 찔렸다. 쓰레기를 쓰레기장으로 모아놓고 와야 했는데 아무데나 방치하고 온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해운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45분 걸라는 임랑 해수욕장으로 갔었다. 그리고 쓰레기 자루들을 전부 쓰레기장으로 끌어다 놓고 다시 집으로 왔었다. 나는 계룡산 출신의 한 마리 순록이었지. 그런데 그 일이 두고두고 내 마음을 편하게 했지.

그날의 일기를 찾아보았다. 토요일 날 일인데 일요일에 적어 놓았다.

1980. 8. 10 일요일 맑음

정직하게 사는 것이 나의 모토이다. 정직해야만 마음이 평온하다. 성실해야만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바빠야만 보람이 있는 법인가 보다.

어재는 회사에서 자연보호운동을 나갔었다. 목적지는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임랑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휴지와 쓰레기를 줍는 작업 중 대부분의 직원들이 바다를 감상하듯 응시하며 구경만 할 뿐 열심히 줍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바닷가에 누가 오물들을 무질서하게 버려서 더럽혀 놓았는지도 한심스럽지만 자연보호운동을 나와서까지 형식적으로 하는 데는 참 기가막힌 노릇이다. 우리 국민성의 한 단면을 엿본다. 솔선수범하는 정신, 정직한 정신이 부족한 것 같다. 나 하나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으며 내 주위 한 치 앞을 경시하는 단견성을 소위 엘리트들의 마음속에서 조차 읽고 근심한다.

휴지를 열심히 줍던 중 건너편을 쳐다보니 직원들이 모두 철수하려는 듯 도로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버스 있는 쪽으로 오니 버스가 벌써 출발해버리는 게 아닌가? 화가 난 동료들은 쓰레기자루를 내동댕이치고 다른 차(영업용 차)를 타고 흩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렸으나 쓰레기 자루는 내동댕이치고 갈퀴와 집게는 길가 집에 맡기고 흩어지는 것이었다.

집에 오면서, 또 집에 와서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화가 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인데...

점심을 먹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임랑으로 갔다. 비가 많이 내렸다. 우산을 받고 아까 버렸던 쓰레기 자루들을 끌어 쓰레기장에 가져다 버리고 다시 집으로 왔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일시적으로 화가 난다고 해서 감정으로 일을 하면 안 된다. 이성을 가지고 순리대로 임해야 한다. 가정을 보살피는 일 만큼이라도 회사를 보살피고, 국토를 보살펴야 나라가 아름답고 발전되지 않을까 싶다. 애국자들이야 가정이나 개인적인 것은 모두 버리고 오직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현대인들은 자기 개인이나 가정을 위하는 만큼이라도 국토를 보살피면 어떨까? 그것마저 불가능하다면 이 땅에 살만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정직과 성실 그리고 정의를 가지고 살자.

 

칠암에는 회집이 많았었다. 그 기억을 되살려 칠암 바닷가로 들어가니 역시 횟집이 많았다. 혼자인지라 우선 혼자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돈만 내면 된단다. 회집이름은 읍내회집, 전화는 051-727-0591. 30년 전에도 읍내회집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회를 못 먹어서 계장님이 짜장면을 시켜주시며, 우째 이 맛있는 회를 못 묵노, 참말로, 딱 한번만 묵어보래, 맛 봤다 카믄 마 니 혼자 다 묵을라 칼끼다, 하며 놀렸었는데, 그리고 그게 약이 올라서 회를 일단 맛을 보았더니 맛이 괜찮아서 그때부터는 없어서 못 먹었지. 하하. 옛 추억이 새록새록, 그 때 그 직원들의 면면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름을 대라면 다 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은 공개일기라서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하얀 붕장어(あなご, 학명은 Conger myriaster, 뱀장어와 닮은 식용 물고기로, 여름이 제철)회가 나왔다. 예전과 똑 같아 보인다. 고추장에 비벼 상추쌈, 깻잎쌈을 싸먹었다. 아하, 맛있다. 예전의 바로 그 맛,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술 대신 사이다를 마시며 회 2인분을 혼자 다 먹었다.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했으므로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그러는 순간 어느 대학에서 전화가 왔다. 강의를 맡을 수 있냐고, 그래서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물론이라 대답했다. 그렇게 칠암 바다는 나에게 맛있는 회와 함께 럭키 7의 행운까지 선사했다. 2016. 8. 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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