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에게 보내는 편지

2016년 8월 5일, 6일 부산과 대전에 다녀왔다. 주목적은 음력 7월 4일(금년은 양력 8월 6일)이 어머니 기일이라 양산 어머니 산소에 성묘하는 것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대추현미밥을 말아먹고, 4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새벽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새벽을 깨우는 드라이브가 제법 경쾌하다. 에어컨을 틀고 라디오를 들으며 클러치에 자유로운 왼발로 까닥까닥 장단을 맞추어본다. 여행의 설렘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혼자의 자유, 혼자서 노래하고, 말하고, 울고, 웃는 자유, 이게 참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다. 도로 이정표와 카메라이외에 누구의 간섭도 없는 오직 나만의 길(my own way). 음성, 죽암, 추풍령, 평사휴게소,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으면 먹는다. 양산 통도사 톨게이트를 10시 30분에 통과하여 어머니의 땅에 이르니 10시 50분, 태양이 작열했다. 포도, 배, 북어포, 과자, 참이슬을 차려놓고 절하니 눈물이 솟는다. 누나의 유작 소설 <비오는 날의 로맨스>를 꺼내 하늘로 치켜들며 어머니께 고했다. 어머니, 혹시 누나 만나셨어요? 지난 4월 26일 어머니 만난다고 갔는데... 이 책 누나의 작품이에요. 누나 칭찬 좀 해주세요. 어머니!

말없이 서있는 묘비 그리고 그 봉분의 하늘, 가끔 불어오는 따끈한 바람이 눈물을 스쳐간다. 그러나 마냥 그곳에 있을 수도 없는 탁한 영혼, 나는 또 어머니와 누이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곰곰 생각하면서 푸른 바다를 보기 위해 또 유유히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장군 대변의 해동용궁사. 경치가 참 좋다고들 하기에 부산에 온 길에 들르기로 한 것이다. 내비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니 그 절 주차장이 나왔다. 12기 19분. 입구부터 상행위가 범상치 않다. 주차비는 영수증도 발행하지 않고 무조건 3천원.

절의 이정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바다에 임한 절(sea faced temple)이 보인다. 해변 암반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가람을 배치한 듯, 주변의 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금요일인데도 오가는 관광객이 빼곡하다. 경내에 거대한 금빛 부처가 앉아 있다. 절의 곳곳에 복전 함이 배치되어 있고, 수능 100일기도, 학업성취 불(佛) 같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문구와 현수막이 사찰마케팅을 전개하는데, 스님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관세음보살 염불소리만 확성기에서 퍼져 나온다.

바닷가에 우체통 하나가 서 있다. 그 우체통은 일반 우체통보다 2배는 커 보이는데 그 통에는, 世界唯一不送郵便函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편지를 발송해주지 않는 우편함. 편지를 발송해주지 않으니 편지를 넣지 말라는 뜻인지, 아니면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써서 그곳에 넣으면 비록 발송은 안 되어도 텔레파시가 통하여 사연이 전달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인지 판단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른다. 그래, 너는 너에게 편지를 쓰면 되겠다. 네가 하고 싶었던 말, 일, 행동들을 잘 적어서 너에게로 보내보렴. 저 우편함은 그렇게 하라는 뜻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이곳이 대변항이거든. 그러니 네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서 너 자신의 우편함에 넣어라 이거지. 그러면 너에게는 잘 전달될 것 아닌가. 그런데 그 편지는 정말 진실하게 잘 써야 해. 그러면 그것이 너의 문학이 될 수 있겠지. 편지도 좋은 문학이거든. 그래, 너도 너에게 참된 편지를 쓰자.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산 태화강 대숲공원  (0) 2016.08.06
혼자 회를 먹다  (0) 2016.08.06
두유 노우 두유?  (0) 2016.08.04
인재는 인파를 헤치고 나온다  (0) 2016.08.03
팔월엔 여행을 떠난다  (0) 201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