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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중복 미셀러니

중복

오늘 지난번 종합건강검진에서 빠진 대장검사용 시료를 채취하여 그 친절한 건강검진센터에 갔다. 그런데 12시 20분이었다. 13시부터 다시 업무를 본다고 했다. 점심시간이라 드문드문 있는 직원들, 그들도 하나같이 미소를 띠고 있어 기다려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아 1층으로 내려오는데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어디 계셔요? 점심은 드셨어요? 응, 나 뷔페에서 점심 먹고 잠실에 좀 나왔어, 전에 건강검진 받은 거 결과가 나왔는데 혈압, 당이 약간씩 높게 나와 상담 좀 해 보려고, 아 네, 괜찮아야 할 텐데요, 괜찮을 거야, 아주 미세하게 높으니까, 아버님, 날씨가 무척 덥죠? 오늘 중복이라는 데 맛있는 거 사드세요, 자주 전화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나는 중복인줄 몰랐네, 중복이면 닭고기 먹으면 되겠네, 동그란 닭고기도 있어, 하하(나), 하하하하(며늘), 그래 더운데 집에 에어컨도 없이 힘들겠다, 네, 얼음 팩을 만들어서 죽부인처럼 안고자요,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어요, 아하 그래, 너무 차갑겠다, 아니에요, 시원해요. 그래 전화 고맙네. 바쁜데 어서 일 하세. 네, 또 전화 드릴게요.

중복도 명절로 챙겨주는 며느리의 마음이 고마워 기분이 좋아졌다. 지하상가에서 커피 한 잔을 빼 마시고 <정보봉사개론> 공무원시험 자료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시료를 제출한 후 검진결과에 대하여 상담을 했다. 나정도 실버 의사께서 내 검진 결과표를 살펴보면서 소상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혈압이나 당은 약간 높으나 미세하므로 걱정할 게 안 된다고 하면서, 단 하나 전립선 비대 수치가 약간 높으니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아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래서 내 생각에, 아직 아무 불편한 게 없는데 하며, 일단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보기로 마음먹고, 돌아오는 길에 가락동 개인 피부비뇨기과에 들렀다. 그 동네 의사 분은 나보다 더 계급이 높은 실버로 보이는데 의학박사였다. 센터 검진 소견을 죽 훑어보시더니 큰 병원 갈 정도는 아니고, 일단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 뒤, 간단한 검사를 해보자면서 바지를 내리라고 했다. 쑥스러웠지만 징병검사 받을 때를 생각하고 과감히 내리니 항문에다 뭘 집어넣었다가 뺐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좀 왈왈거렸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공자 왈, 맹자 왈, 내가 이제 아래쪽에도 성인이 되는구나 하며 속으로 웃었다. 약 처방은 매우 간단했다. 약국에 들러 약을 타가지고 돌아왔다. 집에 와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샤워를 하고 나오는 데 이번엔 아들 전화가 왔다. 중복 날이라면서. 아들 전화 며느리 전화 한날 받으니 이것도 중복이네. 그런데 원래 중복보다 아들 며느리 전화 중복이 더 기분이 좋네.

저녁이 되었다. 오늘이 중복이라도 신진대사 관리를 위해 고기는 먹지 않기로 하고 평소 가끔 가는 전주순두부집에 가서 들깨영양순두부를 한 그릇 사 먹었다. 오늘 중복 날, 효도전화도 두통이나 받고, 밭에서 나는 고기, 몸에 좋은 콩 음식을 맛나게 먹고 오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것이 오늘 나의 인문학 미셀러니다. 하하. 이 내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올리지 않기로 한다. 아, 불로그도 사회관계망 인가? 2016.7.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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