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나비 이야기를 했으니 벌 이야기를 할 차례다. 내가 벌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들의 인상착의를 가지고 감상적 평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이글은 학문적인 글이 아니고 문학적인 글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벌이라는 곤충도 사람에게 많은 지혜를 준다. 우선 벌은 나비보다 동작이 한 템포 빠르다. 나비가 여유 있는 드론이라면 벌은 쏜살같은 제트기다. 또 그들은 침묵을 금이라 여기지 않는다. 벌이 날아다닐 때는 쉼 없이 고음으로 윙윙거린다. 꽃에 앉으면 그땐 조용히 꿀을 먹고 꿀을 딴다. 사람이나 벌이나 먹을 땐 조용해진다. 단, 요즘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을 닮아 먹을 때도 많이 떠든다. 그러나 벌은 일할 때와 먹을 땐 반드시 조용하다. 벌도 꽃이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나비의 생각에 동의하나보다.
벌은 항상 바쁘다. 그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그 집단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벌은 정신무장이 고도화된 군대 같다. 그들은 대단한 단결력을 과시한다. 벌집을 건드리면 그야말로 벌집 쑤신 것 같다. 전 대원이 나서서 적을 공격하고, 자살공격도 불사한다. 평화 시에는 더덕더덕 클러스터를 만들어 어느 정도 늘어져 쉬기도 한다. 아니면 벌집 속에서는 그들의 행동강령을 익히고, 계속 새로운 작전을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꿀사업 경영계획(Honey Business Plan), 적의 침입에 대비한 전략계획(Strategic Plan for Invaders)을 수립하여 본능 메모리에 입력해두고 사건 발생 즉시 과감한 행동을 실천한다.
윌리엄 블레이큰가 누가 “바쁜 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게으름을 경계하는 명언이지만 내가 볼 때 그 말은 좀 비인간적이다. 인간은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바쁠 때 바쁠 줄 알고, 공부할 때 공부할 줄 알고, 놀 때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한 그 명언의 상징성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인간과 벌은 다르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벌 나비의 질서시스템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느슨한 법치질서, 게으른 국방질서, 고질적 지역주의, 계파적 중우정치, 우리들은 이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아닌 것만 같다. 우리는 지금 벌처럼 강한 군대, 엄격한 정치 질서, 나비처럼 유연한 심미적 예술질서를 필요로 한다. 유연한 날개 짓으로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의 예술경제를, 부지런하고 정확한 벌 효과(bee effect)의 정치질서를, 그리고 동양 대덕(大德)의 인간 효과(man/woman effect)의 인륜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떤 미사일도 사드 이상으로 요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벌의 정신(beeship)을 배워야 한다. 자세한 것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www.beedemocracy.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