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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지하철 독서피서

지하철 독서피서

일요일 오후 2시 잠실에 나가보았다. 지하 은성식당에서 매콤한 된장찌개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교보문고에 갔다. 잠실에서 내가 갈 곳은 언제나 그곳뿐이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서점 바닥에 퍼질고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분들은 다른 고객들이 그 위치에 있는 책을 찾으러 가도 귀찮다는 듯 미동밖에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그렇다면 박수를 처 줄 일이다. 요즘은 서점에서도 그런 분들을 그렇게 제지하지는 않는다. 어떤 여자 분은 스피치를 하고 다닌다. 그분은 책을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뭐라고 연설을 한다. 옷차림은 이상하지 않은데 행동은 이상하니 문화적 정신병에 걸렸나보다.

우선 전부터 사고 싶었던 청소년용 도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검색하니 재고가 1권 있었다. 직원한테 부탁하여 바로 그 책을 찾았다. 다시 외국 서적 코너로 갔다. 그 책의 영문판이 있다고 들었기에 영문판도 함께 구하기 위해서다. 역시 직원한테 물어보았다. 직원이 검색을 해보더니 예, 있습니다, 하고는 서가에 가서 바로 찾아주며, 감사합니다, 하고 절(bow)을 했다. 번역본의 제목은 <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 다시 내가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아니라 <나는 꿈을 꾸는 암탉>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래서 번역이 어려운 거다. 번역자는 의역을 하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직원들은 공공도서관 사서보다 언제나 친절하다. 업무처리도 신속하고. 유니폼을 입고 명찰까지 목에 걸고 있어 직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불편하면 바로바로 직원한테 물어보면 대개 만족스럽게 해결해 준다. 공공도서관 사서들이 교보문고 직원보다 북서비스를 못하다니, 짓나니 웃음이요, 지나니 한숨이다. 휴-. 책을 사가지고 나오다가 같은 교보문구에서 서예(caligraphy)용 빨간 펜 두 자루를 샀다. 책을 읽을 때 메모용 또는 교정용으로 쓰기 위해서다. 나는 내 책이건 남의 저서건 교정을 보며 읽는다. 그러면 책을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언제부턴가 그게 나의 독서 방법(reading methodology)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독서에 관한 책을 쓴다면 아마 <쓰면서 읽고 읽으면서 쓰라> 또는 <Writing으로 Reading하라> 정도가 될 것 같다. 읽기와 쓰기의 상보관계를 유지하면 독서효과는 더 극대화될 수 있다고 본다.

바로 8호선 지하철을 탔다. 시원한 열차 안에 기대서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가 솔솔 났다. 문정역에 도착했는데 내리기가 싫었다. 내리지 않고 분당 선으로 갈아타고 죽전까지 가며 계속 읽었다. 죽전에서 되돌아 문정역까지 오면서도 읽었지만 다 읽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문정에서 내렸다. 막 그 때 전화가 왔다. 둘째였다. ‘그래, 아들, 하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어디계세요? 식사는요?, 묻기에, 나 모란행 독서열차 탔어, 지금 막 문정에 내렸어, 하니 아들이 웃었다. 어서 식사 꼭 챙겨 드세요, 하며 전화를 마무리 했다. 아까 정오경에는 제주에 있는 큰 아들이 안부전화를 해서 나를 안심시켰는데 저녁때는 둘째가 목소리를 들려주니 혼자 살아도 이럴 땐 행복하다. 2016. 7.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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