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초복

2016. 7. 17(일) 흐림

초복初伏

달력에 보니 오늘이 초복이다. 복은 엎드릴 복자다. 더워서 힘이 빠져 바닥에 엎드린다는 뜻인가 보다. 복날은 보신탕을 먹는 게 언제부턴가 근대 민간 식문화의 전통이 되었다. 날이 너무 더워 진이 빠지므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줘야 한다는 보건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복날에 보신탕을 먹어야 하나? 아니 털옷까지 입고 개도 더워 엎드려 혀 내밀고 진짜 쎄 빠지게 헉헉거리는데 그 힘든 개들을 잡아먹겠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오늘 아침 텔레비전 방송에 복날에 즈음하여 개 도둑이 많다는 뉴스가 나왔다. 개 도독은 애완견이건 명견이건 뭐건 훔쳐다가 고기 집에 팔아먹는단다. 그들은 개를 웍 소리 못 하게 제압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했다. 참 으로 고얀 놈들.

소나 말은 풀만 먹어도 사람보다 훨씬 힘이 좋다. 살집 전문가 돼지도 고기를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염소는 고기 한 점 안 먹어도 암벽 등산의 고수다. 꼭 고기를 먹어야 살지고 힘이 생길 것 같은가? 그것도 사람 곁에서 사람에게 온갖 애교를 떨어대는 개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어야 힘이 생길 것 같은가? 내가 개고기를 먹지 않으니 A, B, C, D 등 온갖 욕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오늘은 복날 치고 덥지가 않다. 두터운 구름이 땡볕을 가리고, 바람도 솔솔 부니 시원한 느낌마저 든다. 나도 잠시 나가서 감자튀김과 함께 불고기 햄버거를 사 먹었다. 나도 고기를 먹기는 먹은 셈이다. 그래서 햄버거도 고기인데, 뭐 개고기 안 먹는다고 청량한척 하지 말라고 반격해 오면 할 말은 없어진다. 아이고, 그래 개고기 많이들 쳐 잡수. 먹고 개차반은 되지 마소, 덜.

부천 친구가 닭고기라도 사먹으라고 위로 전화를 해 왔다. 복날까지 챙겨주는 그 살가운 죽마병우(竹馬兵友)의 우정이 고맙다. 그래서 닭고기 대신 계란을 몇 개 삶아 먹어볼까 생각중이다. 계란도 고기 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계란은 칼로 잡지 않아도 되니 좋고, 뼈다귀를 발라내지 않아 좋고, 흰자와 노른자가 적당히 디자인되어 모양도 좋으니 좋고, 그래서 계란은 나에게는 딱 맞는 복날의 영양식품이겠다. 좋다. 간장계란의 노하우를 살려 계란을 3개만 해먹어보자.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일병 인문학  (0) 2016.07.18
오늘 점심식사에 초대합니다  (0) 2016.07.18
모든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다  (0) 2016.07.16
이발理髮, 산발散髮, 탈발脫髮, 가발假髮  (0) 2016.07.16
종(鐘)의 기원  (0) 201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