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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각일병 인문학

2016. 7. 18(월)

각 일병 인문학

각 일병.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우습고도 신기했다. 꼭 군대의 계급용어 같아서였다. 술 먹는 사람들이 어찌 이리 기발할 수 있나 싶었다. 그런데 그 말도 자주 들으니 이제는 식상해졌다. 나나 너나 모든 사람들은 어떤 말이나 현상에 대하여 처음엔 신기해하다가도 세월이 지나면 식상해지는가 보다. 또 그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하지만 각 일병을 실천만 한다면 그 의미는 좋고 계속 유효한 언어다.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을 게 없으니 마시더라도 각자 1병씩만 마시자, 이거지.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도 인문학적 사고방식이겠다.

요즘 와서, 아니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특히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내 생각에는 말로만 그렇게 해서는 인문학을 할 수 없다. 인문학은 말과 글로 하는 페이퍼 인문학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실시간의 실천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말을 아무리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 허구일 뿐이지. 그래서 인문학의 붐을 타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노래해도 대학에서는 인문학 분야 학과를 폐지하고 있다. 그렇게 인문학이 필요하다면 대학의 인문분야 학과는 더 늘어나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인문학 분야 학과는 폐지하고 취업 위주의 학과와 정원은 늘어난다. 이제 교육은 인문학을 역행하면서 인간 교육의 소임을 포기하고 있다. 바보 자식들. 그러게 개돼지 운운하는 교육정책 담당자도 나오는 법이지 뭐.

인간은 너나 나나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런데 교육이 그 영혼에게 물질만 탐하게 만들면 인간은 쓰레기처럼 된다. 요즘 목덜미 잡힌 무슨 부장검사처럼 말이지. 지위도 높은 부장 검사가 돈을 탐하여 거짓말을 일삼고, 막판에는 부장검사가 후배 검사한테 구속을 당하니 자가당착, 꼴불견도 이만저만이 아니지. 나는 일찍이 검사들이 그럴 줄 알았다. 예전에 장모님 교통사고 건으로 검찰청에 갔을 때 그 김 아무개 검사의 태도도 정말 비인간적이었으니까. 내가 또 대전 집 전세 계약자가 주택은행 대출사기를 쳐서 은행에서 고소하여 집주인이라 참고인으로 검찰에 갔을 때도 나는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었다. 배운 사람들이 그러면 못쓰지. 죄인을 다스리는 사람들이라 어느 정도 비인간적인 습성이 있다는 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고인이나 일반 정상인을 대할 때는 좀 겸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을 개돼지라고 막말을 한 교육부의 고위 공무원이나 일부 비인간적인 검찰 공무원들이나 다 인문학의 실천은 뒷전에 두고 있다. 이제는 고위 공직자뿐만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어느새 순진무구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발랑 까져서는 노동운동, 지역이기주의 등 물질적 이익에만 탐닉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정말 인문학 빈곤의 악순환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중학교 때 배운 영국 벤담의 공리주의는 이제 현대에 와서는 허구가 되었다. 공리주의는 인문학의 실천에 바탕을 두어야 가능하다. 이는 빈부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부탄사람들이 왜 행복지수가 높은가? 가난해도 인간답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소개된 라다크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가난해도 인간적이기 때문에다. 고로 인간이 인간적이지 않고는, 다시 말해, 인간이 인문학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인간사회에 행복이 올 수 없다. 내가 또 왜 공자님 같은 소리하고 있지. 오늘은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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