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이발理髮, 산발散髮, 탈발脫髮, 가발假髮

2016. 7. 16(토) 흐림, 비

이발理髮, 산발散髮, 탈발脫髮, 가발假髮

오늘은 이발도 필수로구나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내 머리를 노크했다. 기억에 의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이발을 당했다. 옛날에는 효경에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라 해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댕기를 땋았다가 상투를 틀어 올렸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불편해서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자들 이야기다. 간혹 전통 漢學을 하시는 분은 자녀들은 댕기, 본인은 상투를 하는 분도 있지만. 그러나 요즘 모든 생활 의복과 치장이 서구화된 마당에 머리모양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저렇게 헤어디자인에 의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또 부모가 돌아가신 직후 상중에는 머리를 풀어 산발을 했다. 부모를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이라는 뜻이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흰옷을 입고 있으면 귀신같다. 귀신을 본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귀신은 사람의 형상을 바탕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무서운 모습으로 그린다. 어떤 중국 책에 보니, 귀신 도깨비를 그리는 게 가장 쉽다고 되어 있었다. 아무도 귀신을 본 사람이 없으니 화가가 제 마음대로 그리면 된다는 일종의 우스개였다. 아무튼 사람이 산발을 하면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이발을 하지 않아 좀 장발이 되면 머리가 꺼벙해서 보기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물론 요즘 수염 기르는 사람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런데 70, 80년대는 장발이 유행해서 나도 장발을 했었다. 지금 와서 그 때 사진을 보면 왜 그렇게 촌스러운지, 사진 속의 머리라도 이발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부모님에게도 없었던 탈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 저 윗대 할아버지의 탈발 유전인자가 나에게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현상을 보통은 탈모라고 하는데, 탈발이라는 말도 이발, 산발, 가발과 같이 끝 음이 일관되므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50대 때까지는 탈발이 서서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60대가 넘으니 탈발의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두피의 토양이 척박해져서 그럴까? 아니면 예전에 어떤 점쟁이가 너는 중이 될 팔자, 라고 했었는데, 내가 그 길로 가지 않으니 팔자가 자연스럽게 나를 스님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 이제 좀 더 있으면 승복을 입고 목탁만 들면 영락없이 중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마하반야바라밀 & 아멘.

어제 이발을 했다. 깎을 머리카락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주변에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은 이발을 해야 한다. 이발을 하지 않으면 목덜미가 간지럽고 찝찝하다고 해야 되나. 내가 가는 이발소는 70 노인이 이발사(barber)다. 옛날에 어떤 이발소는 이용원이라고 명칭을 바꾸고, 이발사들은 영어로 barber라고 쓴 아크릴 명찰을 달고 있었다. 영어 외래어를 쓰기 좋아했던 시절이다. 우습다. 이는 붓글씨 족자 방학 숙제에서 먼저 ‘족자’ 라고 쓰고 그 다음에 내용을 썼던 그 당시 학생과 같이 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공문서에 보면 가끔, ...다음(아래) 사항을 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해놓고는 -다음(아래)- 라고 쓰고 그 내용을 적으니 이것도 촌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어쨌든 이발을 하니 개운하다. 그런데 가발을 하려면 비싸겠지? 가발이 진짜 제 머리 같을까? 젊게는 보일 것 같기는 한데. 찝찝할 것 같기도 하고.

이글을 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자 분이었다, 거기 북 카페죠?, 네 네, 거기 만화책도 있나요? 아 네, 만화책은 없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예림당의 WHY 시리즈 학습만화가 200권이나 있는 걸 그랬다. 그분이 학습만화를 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도서관 전단지를 신문에 끼워 돌렸더니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발에 대하여 못 다한 말 한마디가 더 있다. 이발하는 것을 머리 깎는다고 좀 하지 말자. 머리카락을 깎는 것이다.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하지 않겠는가. 진짜 머리[頭]를 깎으면 큰 일 난다. 아, 머리 깎는다고 해도 머리 다음에 카락이 생략된 것으로 알라고요? 아, 예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아멘.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복  (0) 2016.07.17
모든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다  (0) 2016.07.16
종(鐘)의 기원  (0) 2016.07.15
고객 응대중  (0) 2016.07.15
커튼의 필요성과 목적  (0) 201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