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커튼의 필요성과 목적

2016. 7. 15(금)

커튼의 필요성과 목적

나의 생활공간에 커튼 하나를 달았다. 나 혼자는 못 달겠어서 엊그제 칠판 입간판을 만들어 준 동네 목수에게 부탁했더니 공짜로 달아주었다. 천장에다 커튼레일을 달아야 했다. 그런데 그 목수 장인이 천장을 두드려 보더니 천장이 석고판이라 했다. 석고판에 나사못을 박으려면 피트를 박고 그 구멍으로 나사못을 박아야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져온 연장주머니에서 피트를 꺼내더니 천정에다 연필로 구멍 낼 위치를 표시했다. 선생님, 책 하나만 주실래요? 무슨 책이요, 아 저 노트 좀 주세요, 아 네. 영문은 몰랐지만 노트를 집어 올려주었다. 그랬더니 그 노트를 직각을 맞추는 잣대로 활용하여 커튼레일을 달 못 구멍의 위치를 표시했다. 노트가 임시 직각자가 된 것이다. 거참. 그러더니 또 선생님, 이 컵 하나 쓸게요, 했다. 그래서 그러세요, 했더니 그 투명 컵을 반으로 잘라 컵 바닥에 전동드라이버로 구멍을 내더니 그 드라이버에 컵을 끼워 받치고는 천장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을 뚫을 때 부스러지는 석고판 가루가 그 컵에 담기도록 하는 것이다. 야, 참, 정말 호모 사피엔스네요, 내가 감탄하며 한마디 했다. 그가 피식 웃었다. 그 목수 장인은 일을 생각하면서 하느라 동작은 좀 느렸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도 머리를 써서 했다. 보통 기술자들은 고객은 잘 배려하지 않고, 뭐 좀 할 줄 안다고 석고건 뭐건 마구잡이로 구멍을 뚫는데. 전에 다른 기술자는 남의 비품을 좀 함부로 다뤄 오염을 시키면서, 공사에 시중드는 부인에게도 신경질적으로 대하면서, 그러면서 공사 마무리는 거칠었었다. 사람에 따라 업무품질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다.

드디어 천장에 커튼레일이 부착되어 커튼을 달았다. 두터운 커튼이 아니라 속치마 같은 얇은 커튼이다. 전에 아파트에 살 때 사용하던 것인데 끌고 다녔더니 이렇게 쓸모가 있다. 달아 놓으니 그럴 듯했다. 잡동사니를 좀 가리는 파티션의 기능, 그리고 꽃과 나비 문양의 시각적인 기능에다 에어컨 바람에 산들 산들 휘날리는 시원한 느낌의 기능까지, 나에게 고객만족을 주었다. 이러한 커튼의 기능에는 커튼의 필요성과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학생들은 주관식 시험에서 OO의 기능과 목적을 쓰라고 하면 좀 헛갈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그거다. 어떤 기능을 해야 그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다만 서술을 할 때 기능의 연장선에서 목적이라는 말을 잘 전개하여 그럴듯하게 쓰면 되는데, 글을 많이 안 써보고 생각해보지 않아서 헛갈리는 것 같다.

오늘 커튼을 달면서 새삼스레 느낀 점은 무슨 일을 하든지 저 목수처럼 일의 앞뒤를 잘 생각하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하다가는 실수를 하기 쉽고, 업무의 품질을 높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 목수는 우리가 말로만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다워야 한다는 것을 오늘 나에게 보여주었다. 도서관이라고 뭐가 다른가? 도서관의 업무를 할 때도 일의 앞뒤를 생각하고 고객을 배려하면서 한다면 고품질의 도서관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송파도서관에 가서 전에 찾다가 못 찾아 대출을 예약한 책 전혜린 번역의 독일 소설<생의 한가운데>를 빌려왔다. 아까 전화로 들었던 여사서의 목소리는 참 친절했었는데 막상 책을 찾으러가니 나에게 전화한 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소도 없이 매우 사무적으로 대했다. 이제 업무타성에 젖어 고객을 타이르듯 하는 말은 고객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오늘 그 책을 보고 싶다는 나의 필요성과 목적은 달성했지만, 나에게 만족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도서관의 서비스는 오늘 목수에게서 받은 목수서비스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느껴져 좀 씁쓸했다. 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30세 전후의 번역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리말의 표현이 남다르다. 과연 전혜린님은 천재였었구나. 아, 위대한 한국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鐘)의 기원  (0) 2016.07.15
고객 응대중  (0) 2016.07.15
변화  (0) 2016.07.14
건강검진  (0) 2016.07.13
나는 짐이다  (0) 201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