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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나는 짐이다

2016. 7. 12(화) 맑음

나는 짐이다

나는 짐이다. 나라서 짐朕이고, 짐이라서 짐이다. 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짐은 국가다, 할 때의 짐은 왕이 자신을 칭하여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짐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 나, 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므로 일반인도 나를 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 자기를 짐이라고 하니, 일반인들은 짐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 또 하나의 짐은, 인생은 짐이다, 라 할 때의 짐이다. 우리는 짐이 많다. 태어날 때는 길이 좁아서 짐을 지고 나오지 않았지만 아기 때부터 짐이 생긴다. 우유병, 기저귀, 가방, 옷가지, 유모차 등 엄마의 짐은 아가의 짐이다. 더군다나 책과 문방용품, 가재도구 등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짐에 묻혀 산다. 평소엔 짐이 많은 걸 느끼지 못하다가 이사할 때는 짐이 많은 줄 알게 된다.

나라는 이 짐朕은 평생 무거운 저 짐을 지고 가야하는 짐꾼이다. 사는 동안 이 짐이 저 짐을 지고 헉헉대고 있다. 정약용의 거중기와 현대의 기중기도 나왔지만 그들이 우리 인생의 짐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인생의 짐은 물질도 있고 정신도 있어 삶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짐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중치가 붙는다. 그래서 노인들은 더 짐이 많다. 왜들 잡동사니를 그렇게 버리지 못하는지, 그 짐을 다 가지고 저세상으로 갈 것도 아니면서 노인들은 짐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 어떤 노인들은 손수레에 짐을 끌고 다닌다. 그런 모습을 볼 땐 옛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이고 진 너 늙으니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의 시조라 한다. 정철, 그 때도 노인들은 짐을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녔나보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고, 가끔 휴지통 비우듯이 비우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질적인 짐도 정신적인 짐도 버릴 땐 좀 과감히 버려야 영혼이 가볍다. 물욕에 꽉 차 있는 영혼은 아귀餓鬼와 같다. 인생의 짐은 부자든 빈자든 다 지고 산다. 인간다워지려면 부자든 빈자든 짐을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부자는 물질의 짐을 내놓아 사회공헌을 하고, 빈자는 정신적인 짐을 청소하고 닦아 빛나는 등불을 밝혀야 한다. 너무 추상적인가?

오늘 짐을 많이 버렸다. 전부터 이사 때마다 끌고 다니던 신지도 않는 신발 한 자루, 3년 밖에 안 된 깨끗한 프린터지만 제조사에서 잉크 생산을 중단해 못 쓰게 된 캐논프린터, 고장 나 못 쓰게 된 자질구레한 전자제품, 1년 묵은 신문 뭉치 등을 내다 버렸다.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저기 꽉 차있는 저 책들은 짐이라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결국은 버리고 가야 할 텐데, 오히려 다른 분이 버리는 책까지 가져오고 있으니 나의 책 짐은 점점 더 무거워만 간다. 그래서 나대로 변명거리를 찾아본다. 책이라는 짐은 좀 특수한 짐이야. 저걸 버리면 지식이 나가고, 지혜가 나가고, 결국은 정신이 나가게 되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될 거야. 책이 사람이고 사람이 책이니까. 그러니 책이라는 짐은 버려서는 안 되는 짐이지. 버려야 할 책이 있기는 있어. 그러나 버릴 땐 잘 골라서 버려야 해. 그러니 짐朕인 나도 부지런히 좋은 책을 쓰기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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