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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문상기(問喪記), 영등포-대천

2016. 7. 8(금) 맑음

문상기(問喪記), 영등포-대천

2016년 7월 7일 아침, 삐리 삐, 삐리 삐~ 스마트 폰 문자 음이 울렸다. 너는 부고 문자를 받았다. 000부친 별세, 대천역전장례식장, 발인 7월 9일.. 네가 안 갈 수 없는 자리다. 왜냐면 그 출판사 대표가 너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와서 너를 달래 주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받는 순간 너는 문상을 가야한다는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교통편을 묻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너는 인근 뷔페에 가 점심을 때운 후 경찰병원 역에서 3호선 전철을 타고, 교대역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신도림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영등포역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영등포의 밤’이 생각났다. 오기택의 노래다. 궂은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불빛 ♪.. 야, 문상가면서 무슨 노래야 노래는. 너는 곧 흥얼거림을 멈추었다. 영등포역에 왔다. 차표를 사니 1시간의 여유가 너를 기다린다. 너는 역 구내를 한 바퀴 돌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수첩을 꺼냈다. 무엇인가 글을 쓰고 싶다. 너는 도서관에 있을 때보다 밖으로 나오면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 그래서 메모수첩과 필기구를 가지고 다닌다. 옆에 옆 어떤 아주머니도 노트에다 빼곡히 글을 쓰고 있다. 저 여인도 문인인가보다. 그러나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너도 무언가 써야하기 때문이다. 너는 수첩을 꺼냈다. 서울 국제도서전시회 행사 때 얻은 분홍색 볼펜도 꺼냈다. 지금부터 너의 문상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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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이런 식으로 해도 나쁘진 않다. 출판사 대표의 부친상에 문상을 가는 것이지만 돌아가신 분이 95세라니 호상이라 마음이 무겁진 않다. 대천엔 한번인가 해수욕장을 지나 온 적이 있지만 머물러 본 기억은 없다. 오늘은 대천에 아마 두 시간 정도 머물다가 올 것이다. 그것도 장례식장에.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다. 나는 아직 장항선을 타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장항선을 탈 기회가 주어졌다. 대천은 왕복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시간에 글을 쓰면 되기에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도 인생길이다. 기차 길 옆 오막살이도 인생길이고, 기차를 타는 것도 인생길이고, 내려서 논두렁을 걷는 것도 인생길이다. 그렇지. 인간은 이 시간과 공간에서, 이 땅 위에서, 이 땅의 생명들과 함께 미운 정 고운 정 나누며 살아가는 거지. 뭐 다 그런 거지 뭐. 그치?

플랫폼으로 나가 14시 32분 익산 행 열차를 기다린다. 용산 발 익산 행 열차가 영등포역에 정시에 들어왔다. 그 열차는 무궁화호라 KTX보다 좀 못생겼다. 열차를 타니 곧 출발했다. 그런데 KTX는 무슨 약자야. 스마트폰으로 사전을 찾아본다. KTX: Korean Train Express. 장항선엔 아직 KTX가 없다. 차 안에 들어오니 에어컨 공기가 쾌적하고, 차창을 내다보는 재미도 경쾌하다. 열차는 미끄러지듯 달렸다. 속도감이 비행기보다 훨씬 낫다. 13세 때, 목포로 수학여행 갈 때 기차 안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던 기억이 난다. 응뎅이, 방뎅이, 궁뎅이, 응할 응, 방어할 방, 궁할 궁, 별 농담이 다 생각난다. 스쳐가는 꽃과 나무, 칙칙한 방음벽과 건물들의 무질서, 무질서가 때로는 질서처럼 보인다. 전부다 반듯반듯하면 그건 자연스런 질서가 아니지. 저 아파트와 건물과 담벼락은 저곳에 인간이 살고 있음을 대변한다. 그래서 가끔 똥냄새도 나고 시궁창 냄새도 나고. 그러나 더럽다는 평가는 하고 싶지 않다. 나도 인간이니까. 구린 내 나는 인간들의 거리, 그래서 꽃과 나무와 새, 그리고 산들바람이 있지. 인간도 그들과 함께 살면 밝고 즐겁단다. 마음에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가 마음을 치료하고, 창밖의 그림은 열차를 따라 역으로 흐른다. 서양에서는 교통도 흐른다고 하던데, Traffic flows. 그러고 보니 세월도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냇물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바람도 흐른다. 열차는 궤도를 따라 흘렀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삶이 지루한가? 그러면 여행의 방향을 바꿔보자. 여수행, 목포행, 부산행, 강릉행... 인생은 변화의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Life flows. 어느 새 수원, 수원역에 도착했다. 수원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이며 생각도 축여본다. 어깨를 시원스레 노출시킨 아가씨들이 열차에 올라와 의자를 마주보게 돌리고 앉았다. 그들은 참새가 지저귀듯 재잘거리며 깔깔대며 찰칵 찰칵 자기들 사진을 찍어댔다. 이 열차는 평택, 천안, 아산, 온양, 삽교, 예산, ---- 대천, 익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1561열차입니다. 스피커에서 여객전무의 멘트가 들렸다. 평택을 지났다. 벼논이 푸르른 데 날씨는 칙칙하다. 저 아가씨들은 주구장창 재잘거린다. 나보다 40년은 젊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은 소똥이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다고 했다. 저 아가들, 나중에도 발랄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남의 일에 감을 하나 놓아본다. 아, 논 가운데 허수아비, 그리고 백 새 한 마리가 선명하게 앉아 있다. 허수아비를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 scarecrow, 허깨비다. 우리말엔 아비가 들어가는 데 영어엔 아비(father)가 없다. 우리열차 경부선에서 장항선으로 선로 변경을 위하여 천천히 운행하고 있습니다. 여객전무의 말이 친절하게 들려온다. 천안이다. 天安의 의미는 참 심장하다. 하늘아래 편안한 동네. 그 이름이 부럽다. 천안, 천안, 천안, 하다 보니 千手千眼까지 떠오른다. 천안에서 올라온 지팡이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며느린지 딸인지 인솔자가 있었다. 인솔이 살갑지 않은 걸보니 딸은 아닌 듯. 20세기 할머니가 21세기까지 오셨다. 하기야 나도 20세기 출신인데 21세기에 살고 있다. 도진개진인데 내가 매우 젊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열차는 아산역(牙山驛)에 도착했다. 아산은 어금니 牙자를 쓴다. 어금니가 영어로 뭔지 아세요? 몰라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몰라(molar)가 어금니인줄을? ㅎㅎ. 그런데 나는 어금니가 없다. 내 이는 절반이 틀니다. 틀니라도 음식을 먹을 때 그리 많이 틀리지는 않는다. 틀니도 70%는 기능을 한다. 아산은 현대그룹 정주영회장님의 호인 줄로 알았는데, 그 아산과 이 아산은 다르다. 아산병원(峨山病院)은 현대그룹의 병원이다. 峨는 산이 높다는 뜻이란다. 어금니 아자와는 완전 다르다. H, H, H, H, 냉방이 잘 되어서 그런지 저쪽에서 영어로 재채기를 해댄다. 옆 할머니가 다른 자리로 이사를 갔다. 아마 10분 후면 할머니 냄새도 사라질 것이다. 냄새도 촌수 알아본다고, 엄마 냄새는 좋은데 왜 할머니 냄새는 별로일까. 온양온천, 온양이 지명인데 온천은 홍보용으로 붙였나보다. 온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뜻은 통한다. 따스한 물이 나오고 볕이 잘 드는 고장, 온양, 그 이름이 따스하다. 그런데 온양시 라고 하지 않고 아산시라고 한다. 아, 그 할머니가 다시 왔다. 좋은 자리가 없었나보다. 신창에 도착했다. 신창, 옛날 소시 적에 내가 대전일보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신문을 본 어떤 아가씨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주소가 신창이었었는데,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아가씨도 아마 나 정도 늙어 있을 것이다. 잘 살고 있겠지, 아마도. 무슨 터널인지 터널이 제법 길다. 열차가 도고온천에 도착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도고는 道高였다. 도가 높은 곳인가 보다. 그 아가씨들의 시끄러운 소리, 찰칵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시끄러워도 못 말리겠다. 무서운 세상이라 하이힐로 맞을까 봐.. 신례원, 예산, 揷橋, 홍성, 열차는 계속 달렸다. 삽교라는 이름은 참 특이하다. 중간에 끼워 넣은 다리? 가운데 다리? ㅎㅎ, 홍성은 만해 한용운의 고향이라고 들었다. 내려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역에 도착했다. 옆자리 할머니가 내렸다. 비닐봉지에 약이 잔뜩 들어 있는 걸 보니 천안의 어느 병원에 다녀오시나 보다. 안녕히 가시고 건강하시고요. 속으로만 인사를 했다. 광천역 부근엔 새우젓 간판이 많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청소역이다. 청소한다는 게 아니라 푸르른 곳, 靑所란다. 오후 5시 대천역에서 내렸다. 두리번거리니 대천역전장례식장이 보였다. 그곳으로 논길을 걸어갔다. 문상을 했다. 형제간이 10명은 되는 듯 아들딸이 많았다. 장남이 70이 넘었다니, 아들도 할아버지다. 상주들이 빙글 빙글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형제들의 스타일은 둘이었다. 웨스턴 스타일과 오리엔탈 스타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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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마치고 저녁 7시 29분, 대천에서 다시 용산 행 열차를 탔다. 서편 하늘에 자하가 물들었다. 갯벌도 보이고 다리도 보인다. 민물이 바다를 향해 은빛을 내며 그림같이 흐르고 있다. 저게 大川일까? 저곳으로 가면 三千大天世界가 나오려나? 상상이 꼬리를 문다. 지는 해도 눈이 부시다. 눈부신 황혼. 태양은 이곳에선 지지만 저곳에선 떠서 눈부신 광명을 내릴 것이다. 태양은 위대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했나보다. 태양은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내려준다. 땅거미가 드는 저녁, 열차가 터널에 들었다가 다시 나왔다. 황혼에도 들녘은 푸르고, 새마을 운동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상가에서 소주 한 병을 마셨더니 잠이 왔다. 메모지를 덮고 실컷 잠을 잤다. 코를 골았는지는 모르겠다. 밤 10시, 영등포에 도착했다. 영등포의 밤, 문상을 마치고 왔으니 그 노래를 불러도 되려나. 밤 11시에 내 거소에 도착하여, 영등포의 밤 녹음테이프를 돌렸다. 남 저음이 구성지다. 나도 굵게 따라 불러본다. 인생 별거 아니다. 다 그렇게 희로애락을 겪으며 그래저래 살다 가는 것을.. 대천 할아버지, 삼천대천세계로 훨훨 날아 안녕히 가세요!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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