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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네일 아트

2016. 7. 6(수) 맑음

네일 아트

손톱 예술이라 하면 좀 촌스러운지, 손톱 예술이라는 우리 말 대신 네일 아트(nail art)라는 영어가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세계화의 영향 탓일까? 용어는 그렇다 치고, 잘은 모르지만 손톱에 들어가는 화장품도 여러 종류가 있나보다. 또 네일 아트의 대상에는 발톱(toe)도 들어간다. 이 경우는 토우 아트(toe art)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은데, 그냥 네일 아트에 포함되나보다. 아무튼 네일 아트가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매김 되었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에 처녀들은 봉숭아꽃으로 즙을 내 손톱을 물들였었다. 봉숭아물도 한 번 들면 제법 오래 갔다. 손톱이 자라야 봉숭아물이 밀려난다. 울밑에선 봉선화가 천연염료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오늘 절에서 봉숭아꽃을 보니 누이 생각에 또 눈물이 났다. 그런데 요즘은 화장품 과학의 발달로 온갖 디자인, 온갖 그림, 온갖 색깔로 신체 어디든지 창의적으로 꾸밀 수 있는 정말 아름답고 편리한 예술사회(art society)가 되었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치아도, 손톱도, 재건축과 인테리어의 대상이다. 심지어는 콧대를 새우고, 턱 윤곽을 고치기도 하니 놀랍고도 좋은 사회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종종 있으니 위험사회이기도 하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성형수술의 부작용을 보도할 때 양악수술 시 깎아낸 뼈 무더기를 비춰주는데, 왠지 좀 안쓰럽고 징그러워 보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이러한 정보사회, 과학기술사회, 예술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한 신체, 건전한 정신을 근간으로 외형적인 치장도 해야 한다는, 좀 인문학적인 생각을 해본다. 우리 몸을 아름답게 가꾸고 디자인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걸로 인해 몸과 마음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손상된다면 그건 근본적인 인간성의 손실이다.

나도 머리카락이 몇 개 남지 않아 뒤통수에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다. 주변머리에는 흰 머리가 많아지고 눈썹까지도 산신령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 할 수 없이 두 달에 한번은 염색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모든 치장을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네일 아트에도 인문학적 건강이 깃들어 좀 더 미래지향적인 내일 아트(tomorrow art)로 철학적인 대 전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림없는 망상이다. 하늘에 뜬 구름이 흘러간다. 그래도 인문학자들은 사유라는 도구로 저 뜬 구름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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