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느리게 걷기

2016. 7. 6(수)

느리게 걷기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 그러나 우리의 길에 정처는 있어야 한다. 매일 가는 이 길이 정처 없는 길이라면 그 길은 너무 허전하다. 산책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먼 여행을 할 때도, 길의 방향과 목표는 분명해야 한다. 이제 나도 걸음이 현저히 느려졌다. 거리에 나가면 저 뒤에 오던 사람이 어느새 나를 앞지른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그렇다. 어린이들은 걷는 게 아니라 거의 뛴다. 그것도 팔짝 팔짝, 오른 다리, 왼 다리, 깨금발, 변화를 주어가며 깜찍하게 뛰어다닌다. 그래 그 모습이 귀여워 그 걸음을 따라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동작은 잘 안 나온다. 그러면서 저 추월자들, 저 어린이들의 목표와 방향은 무엇일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나는 왕년에 100미터를 17초에 주파했다. 그때도 좀 느렸다. 그러나 하루에 10리길 산길을 오르내렸다. 학교에 갈 땐 펄쩍 펄쩍 뛰어 내려갔고, 집에 올 땐 코가 땅에 닿듯 고갯길을 올랐다. 아침에 하산하고, 오후엔 등산하고 자연도 감상하며, 입으론 발언하며, 나는 산 속의 어린 도인(道人)이었다. 뛰다가, 걷다가, 명과, 도토리도 만져보며, 그렇게 서두루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의 태연함을 몸으로 익혔나보다. 그래도 언제나 나의 정처는 뚜렷했다. 학교와 집. 여기서도 저기서도 나를 기다리며 안아주는 호인들이 게셨다.

몇 해 전,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글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잘 쓴 글씨는 아니었지만 그 의미가 좋고 잘 와 닿았다. 내가 좀 느린 사람인 점도 그 글의 수용에 일조했으리라. 호랑이의 눈으로 목표를 보고, 소의 걸음으로 가라, 목표를 정하고 소처럼 꾸준히 실천궁행하라, 이런 뜻 같아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랑이 눈으로 보고 소처럼 느리게 가다가는 사냥감을 놓칠 것이라는 역발상이 들기도 했다. 사냥감을 발견했으면 호랑이처럼 빨리 달려야 지, 소처럼 가서 어쩌란 말인가. 이럴 땐 우시호보(牛視虎步)가 맞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느리게 갈 때도 있고, 빠르게 갈 때도 있어야 되나보다. 위의 글귀를 대입히면, 호시우보 할 때도 있어야 하고, 우시호보 할 때도 있어야 하나보다. 느리게 가야할 때 너무 빨리 가면 목표 달성이 어렵고, 빨리 가야할 때 너무 느리게 가도 목표달성이 어렵다. 타이밍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 조절은 쉽지가 않다. 빠르고 느림의 타이밍 조절, 이것이 우리네 인생을 살아가는 노하우가 아닐까? 공원에 나가보니 어떤 아줌마가 얼굴에 못난이 마크를 하고, 하늘을 향하여 권투하듯 양팔을 번갈아 내지르며 걸어간다. 어떤 아재는 손바닥을 짝 펴고 멋을 부리며 걸어간다. 저 여인의 걸음은 uppercut walking, 저 남인의 걸음은 palm walking이라 이름 붙여본다. 부디 목표를 향해 싱싱하게 잘들 가시길...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관, 정신의 곳간인가, 책의 무덤인가,  (0) 2016.07.08
네일 아트  (0) 2016.07.06
비, 물새, 그리고 사랑  (0) 2016.07.05
문학과 학문  (0) 2016.07.04
밀크와 새우젓  (1) 201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