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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비, 물새, 그리고 사랑

2016. 7. 5(화) 비

비, 물새, 그리고 사랑

비가 내린다. 강약을 조절하며 하염없이. 비오는 날은 감정이 센티멘털 (sentimental)해진다.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1헥타르 hectare 쯤) 큰 우산이 되어주는 느티나무가 싱싱한 포용을 베풀고 있다. 우산을 쓰고 지나는 갑남을녀도 보인다. 제들은 뭐가 그리 바빠서 비오는 데 저렇게 다닐까? 사람이 다 나 같지는 않아서겠지. 그러면서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는다.

자고로 인간은 감성이 좀 풍부해야 우울증에 안 걸리고 사는 것 같다. 그것도 잘 삐지는 감성보다는 즐거운 감성, 신선한 감성이 풍부해야 한다. 사소한 일에 신기해서 감탄하는 그러한 감성은 창조로 연결된다.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은 감성이 풍부했다. 현실은 가난해도 낭만적이었고, 괴로워도 멋진 노래를 불렀다. 나는 50년대 생이라 60년대부터 과수원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트롯을 들었는데, 그땐 그 트롯을 싫어했었다. 노래가사가 왜 저모양인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은 없고, 맨날 비 내리는, 물새 우는, 사랑하는, 이별, 하면서 울고 짜며 청승을 빼고 있어 영 와 닿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들어보면 아, 그랬겠군, 맞아, 맞아, 그렇지, 그렇지, 하게 되니 이런 걸 격세지감이라고 하나보다. 그러면서 최근에 익힌 뽕짝, 비 나리는 덕수궁 돌담장 길에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 길래 혼자 거닐까♪, 짠, 새야, 새야, 새야, 새야, 새야♪, 이 뽕짝 저 뽕짝 흥얼거려 본다.

지성인이랍시고 딱딱한 지식과 빅 데이터만 보고 현실 계산만 하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그런 것은 이제 인공지능 로봇에 맡겨도 좋다. 인간은 감성적일 때 인간답다. 예술은 지식이나 데이터베이스에서 보다는 감성에서 나온다. 그래서 평론은 예술 같은 느낌이 적다. 왜 그렇게 분석을 해 대는지? 그러면서도 평론가들은 작품을 잘 안 쓴다. 남이 쓴 걸 평가만 하고, 정작 스스로는 안 쓰는지, 못쓰는지, 작품을 잘 남기지 않는 것 같다. 아차, 내가 왜 평론가를 평론하고 있지. 알아서 하도록 놓아둘 일을.

살다보면 비오는 날도 좋다, 청청하늘의 맑은 날은 더욱 좋다. 그러나 계속 청명하기만 하면 지겹다. 계속 비가와도 지겹다. 비, 해와 달, 구름, 하늘, 녹음, 설국, 바위산, 해변 모래사장, 바다, 모두 우리에게 감격의 대상이고 예술의 소재다. 그 속에 사랑하는 인간들의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더욱 좋다. 트롯은 인간의 이러한 감성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케이 팝을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은 엽기 발랄 발광하며 관광자원이 되어준다. 멋지고 고마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그들에게 인간적인 사랑이 가득 하기를, 사소한 감정에 휩싸여 실수는 좀 하지 말고 정말 참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적 예술인이 되기를 막연하나마 기도해 본다. 비오는 날 기도하면 기도발이 더 잘 먹힐 것도 같다. 지금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줄기, 줄기마다 시를 쓴다. 비야, “올려 거든 한 닷새 왔으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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