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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소, 말, 개의 말

2016. 6. 24(금)

소, 말, 개의 말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에 과연 언어가 있을까? 이런 상상은 매우 재미있다. 우리는 다른 동물에는 언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보기에 다른 동물들도 언어가 좀 있는 것 같다. 글자가 없어 기록을 하지 못할 따름이다. 그들에게는 창힐이나 세종이 없는 탓이리라.

개는 인간과 제일 친한데, 어찌 그리 눈치가 없는지, 지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사람을 보면 무조건 달라붙어 간질 밥을 먹인다. 나의 개에 대한 견해(개견해)는, 개를 보는 것은 좋지만 다리에 기어 붙어 올라올 땐 소스라치게 되므로 그 때는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나 다른 동물을 아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소시 적부터 소를 좋아했다. 소는 송아지나 어미 소나 다 무덤덤하지만 사람 말은 잘 듣는다. 그저 묵묵히,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실천하는 게 소다. 지 등에 올라타도 한번 움찔 할뿐 가만히 있다. 소의 언어는 ‘엄마’ 뿐이다. 가끔 음~메, 하고 엄마를 찾는다. 생각은 빤하고 멀쩡한 것 같은 데, 문학이나 과학은 그냥 이심전심인 듯. 만일 소가 문학을 한다면 부탁할 대상은 엄마일 것 같다. 우리 엄마, 어디로 데려갔어요, 엄마~,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말도 비슷하지만 더 나대고 까분다. 말은 정말 말이라는 말에 맞지 않게 말이 없다. 에어를 뿜는 ‘투루’가 고작이다. 그러나 사람의 말귀는 잘 알아듣고 잘 따른다. 역사적으로 소와 말이 얼마나 인간생활에 기여했는가? 그 위험한 전쟁에도 몇 천 년이나 참여했고, 신농씨의 말을 듣고 우경이라며 부려먹어도 아무 불만이 없었다. 죽도록 일해 주고 지들은 지푸라기만 먹고, 살이 통통 쪄가지고는 뼈다귀와 고기까지 다 바친다. 젖소란 놈은 지 새끼 먹을 젖까지도 인간에게 다 준다. 정말 소와 말은 사람에게 모든 희생을 다 한다. 희생, 하면 양이 유명하지만 소와 말의 희생도 양에 못지않다.

그래서 나는 소와 말을 보면 미안하다 못해 고개가 숙여진다. 어머니는 소를 ‘조상’이라고 했다. 인도인들을 소를 공경해왔다. 오, 고마운 친우(親牛)들, 친우야, 우리가 사람인 것이 너무 미안해. 너희들을 이용해먹고 급기야는 잡아먹으니 인간을 살우자, 살마자라고 해야겠다. 사람은 개를 귀엽다고 해 놓고 개도 잡아먹으니 또한 살견자라고 해야겠다.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나는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들깨 양념이 고소해 먹음직스럽지만 참아야 한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먹지 말래서 참았고, 그 다음엔 참은 게 아까워서 참았고, 지금은 신성한 마음으로 참는다. 개는 어쩜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지, 저 순진한 것들을 인간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잡아먹어서 될 일인가? 죽어 천벌을 받을 일이다.

소는 미국 소라도 엄마, 하고 한국어를 하고, 말은 영어로 투루하며 진짜를 말한다. 개는 영어로 오늘도 걷는다며 웍웍, 하다가도 어떤 개는 왈왈 하고, 한문으로 공맹을 인용하려든다. 서당개인가보다. 그들은 어디에 살든 동종 간 동일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구글 번역은 필요 없다. 다만 기록을 못해 역사를 남기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저들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 인간으로서, 인간 대 소, 인간 대 말, 인간 대 개로서 인간적으로 잘 보살펴주라. 종교인이 아니라도 동물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베풀라. 그러면 당신은 나중에 저승에서 그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인간 대 인간도 인간적으로 못하는 인간들이니 이 말이 먹혀들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대변인처럼 옆구리를 툭, 한번 치지도 말고 너나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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