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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공[球]과 공(空)

2016. 6. 23(목)

공[球]과 공(空)

 나는 축구를 하지는 못하지만 경기를 보는 것은 좋아한다. 축구는 힘 좋은 젊은이가 하는 경기다. 만일 나같이 연약한 사람이 경기장에 들어가 선수들의 몸에 약간이라도 스친다면 내동댕이쳐지기 십상일 것이다. 선수들은 공을 가지고 넓은 플레이그라운드에서 대범하게 논다. 그 역동감은 관람객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골(goal)을 넣으면 중계 아나운서는 목이 터져라 꼴~ 꼴~ 하며 외친다. 나도 중계방송을 하고 싶었었는데, 그 때 선수들은 차범근, 이회택, 허정무 선수가 날았었는데, “자, 허정무 선수 코너플랙 부근에서 드로잉 공격 되겠습니다. 짧게 이회택에게, 이회택 길게 패스했습니다. 차범근 요리조리 볼 콘트롤, 사이드 슛, 아 꼴 대를 맞고 나오네요. 일본 팀 골 키퍼 골킥 되겠습니다. 길게 찼습니다. 다시 허정무 선수 볼 잡았습니다. 허정무 선수 볼을 참 잡아내네요, 네네, 허정무 다시 길게 패스, 차범근 선수 가슴으로 마크합니다. 이회택에게, 이회택 다시 차범근에게, 차범근 롱 슛, 꼴~ 꼴~ 꼴~ 골인됐습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우리가 당당히 일본을 이겼습니다.” 이 정도 중계는 대본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축구 드라마다. 그런데 왜 운동 용어는 외래어가 많을까?

공을 가지고 노는 경기로는 축구, 배구, 농구, 야구, 핸드볼, 족구, 테니스, 당구, 골프 등 여러 질(찔)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선호가 다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즘 골프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골프는 고급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경기였는데, 이제는 전 계층에 퍼져있고, 전 세계적으로 상업화되어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 낭자들이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다. 장하고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나는 골프중계방송은 못할 것 같다. 경기 규칙이라고는 홀인원밖에 모를 뿐 아니라 언더파가 무엇인지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백 바지를 입고 필드에 나가는 것은 멋이 있어 보이지만 그 시간이면 시원한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나에겐 더 적성에 맞다. 그래서 출세를 못했는지도 모른다.

공은 모가 없이 둥글다. 모가 없으므로 힘을 가하는 방향으로 힘의 세기만큼 굴러간다. 모가 하나라도 있으면 공이 아닐 뿐 아니라 잘 구르지도 못한다. 직육면체라면 경기는 불가능하다. 직육면체는 안정적이므로 차는 대신 자리매김할 때 쓰인다. 주사위처럼 말이지. 구기 종목의 경기는 모나지 않은 공을 마음껏 활용하는 것이다. 운동은 물리의 법칙에 따른다. 운동은 힘과 방향이다. 그래서 과학이 적용된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아, 공과 공(空)을 비교해보려고, 이제 공(空)을 생각해보면, 우선 공(空)은 공[球]에 비할 수 없는 크기를 자랑한다. 공(空)은 空間, 즉 宇宙空間이다. 공[球]은 이 광대한 우주공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과 같은 하나의 미약한 물질이다. 그런데 같은 물질이지만 공[球]과 사람은 다르다. 공[球]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지만 사람은 제 마음대로 한다. 슬기 때문이다. 사람은 날개도 없으면서 저 우주 공간도 왔다갔다 놀이 공간(play space)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드론인가 뭔가를 가지고 사람이 매미, 잠자리, 나비, 새처럼 공간을 날아다닐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슬기가 있다 해도 저 우주공간에는 당할 수 없다. 사람은 이 우주공간속에서 나고 죽는 운명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球]과 사람은 空안에서 놀다가 空속에 묻힌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그 말이 맞다. 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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