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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감정의 동물인가, 동물의 감정인가

2016. 6. 22(수)

감정의 동물인가, 동물의 감정인가

오늘 오후 여섯 시 경 출판사에서 막 출산한 누이의 소설 <비오는 날의 로맨스>를 받고 누이의 영혼께 마음으로 신고를 했다. 누이,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하고 눈물 한 줌 훔치며, 그래도 산목숨이니 저녁을 먹으로 밖으로 나갔다. 순대국밥 집에 가서 국밥을 먹으며 소주도 한잔 걸쳤다. 비가 오니 누이와 함께한 그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에 산골에서 우리는 꾀 넓은 국유지를 마치 우리 산처럼 활용하고 살았다. 국유지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우리 산판에 대해 간섭하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는 그 곳에다 밭을 일구고, 다랑 논도 만들고, 그 산에 수려한 노동을 바치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곳은 한 폭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아름다운 산중이었다.

우리 산에는 초목이 무성했다. 한국전쟁 직후라 나무는 별로 없었지만 관목과 잡초가 무성했다. 소, 염소, 돼지, 닭 등 가축, 가금을 기르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그 무성한 초목을 평지 사람들이 베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도 우리에겐 꼭 필요했다. 한 번은 아래 동네 십리 밖 사는 아재가 풀을 베러 와서 우리 산에 지게를 받쳐놓고 마구잡이로 풀을 베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어머니가 나가시더니 경상도 사투리로, 거어서 풀하지 마쉐이, 우리가 말리는 깁니더. 딴 데 가서 해가 가이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그 쪽에서, 아니 온 산판을 다 말리는 거요 시방, 아니 자기들 산도 아니면서 온 산판을 다 말려요. 사람이라는 게 다 동물의 감정인디, 나도 오늘은 여기서 풀 한 짐 해가야겠소. 이러는 것이다. 그 소리에 어머니는 더 화가 나서, 아니 나가라믄 나가지 무슨 잔소리가 그래 많소, 당장 나가시오, 하고 감정의 수위를 높이니, 그 아저씨는 너무 그러믄 못 쓰는기유, 자기 산도 아니면서, 드럽게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고 물러났다. 두 분 다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욕은 튀어나왔다.

 나는 그때 동물의 감정과 감정의 동물을 구별해보려 생각했다. 둘 다 말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라는 말은 흔히 듣던 말이지만, 사람은 동물의 감정이다, 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본 말이라 매우 생소하여 웃음이 나왔다. 하하, 사람이 동물의 감정이라고? 무식한 아저씨네, 하하하.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면 이 말도 그 말도 다 말이 되는 것 같다. 사람에겐 감정이 있으니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 맞다. 그런데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물이니 동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된다. 요즘 짐승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기야 짐승 중에 착한 짐승도 많이 있으니 소, 말, 양, 돼지, 닭 이런 동물은 성선의 짐승으로 꼽을 만하다. 이들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짐승을 해칠 뿐 아니라 동종인 사람도 해치니 이게 동물의 감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모두 정상 인간이라고 폼 재지 말라. 사람이 감정 한번 잘못 발동하면 짐승만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감옥도 있는 거다. 감옥에서도 인간의 감정을 잘 다스려 재기해 훌륭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다. 인간이 짐승의 감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짐승의 감정이 되려면 착하디착한 한우, 말, 양, 토끼, 종달새, 꾀꼬리 등 아름다운 동물의 감정이 되어 그들이 하는 봉사를 따라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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