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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눈치와 눈칫밥

2016. 6. 21(화)

눈치와 눈칫밥

사람에겐 눈치라는 게 있다. 누구를 만났을 때 싫어하는지, 경계하는지, 좋아하는지를 순간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센스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눈치도 착오를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대개는 처음 순간의 눈치가 딱 들어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회사나 학교 등 사회생활을 좀 하다보면 척 하면 착 이라고 할 정도로 눈치가 빨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센스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눈칫밥을 먹기가 십상이다.

엊그제 B교수와 함께 친구가 일을 하는 5일 장에 갔을 때였다.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친구와 반갑게 악수를 하고, 너무 바빠 보이 길래 우리 끼리 시장 구경을 했다. 우선 천 원짜리 칡즙을 한잔씩 들이키고, 온갖 잡화를 파는 시장의 난전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헸다. 트롯 CD를 한 장 사서 들고 다니며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기도 했다. 한 20분 쯤 돌아다니다가 친구와 점심을 같이 하려고 다시 오니 다행히도 친구의 부인이 나와 있었다. 점심을 같이 할 수 있겠다, 싶어 친구에게 에둘러 물었다. 어떻게, 바빠서 식사같이 할 수 있겠어?, 하니 친구는 아이 그럼, 하며 자기 부인에게 갔다 올게, 하고 따라 나서려 했다. 그 순간 친구 부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눈치 9단인 나도, 그려, 바쁜데 일 봐, 있다가 차나 한잔 하자, 하면서 그 난전을 떠났다.

그 친구 부인은 전에 여러 번 보았지만 오늘처럼 나를 못마땅해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제법 오래간만에 갔기 때문에 더 반가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분을 달고 가서 그런지 억지로 웃는 모습이 좀 밝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상하다, 어제 부부싸움을 했나, 아니면 집안에 무슨 복잡한 일이 생겼나, 이리 저리 추측하다가 B교수와 둘이서 소머리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 친구로부터 어디 있냐고, 오겠노라고 전화가 왔다. 곧 친구가 와서 술 한 잔을 따라 건배하며 같이 즐겁게 식사를 했다. 친구에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점심값을 친구가 내겠다는 걸 뿌리치고 내가 냈다. 그동안은 친구에게서 점심을 여러 번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내가 점심을 사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 세 명이서 낮술을 적당히 걸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게에 다시 들러 친구 부인께 정중히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왠지 B교수에게 미안했다. B교수와 헤어져 귀가하는 차안에서도 영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분명 눈칫밥을 먹었지, 그렇지, 앞으로는 친구가 바쁜데 그 시장으로는 가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눈칫밥을 먹을 때가 있나보다. 아니 그날은 내가 눈치가 좀 없었나보다.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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