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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삶의 의무

2016. 6. 18(토)

삶의 의무

한 생명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도 의무와 책임이 많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단순히 부모님의 어떤 유전 인자에 의하여 주어진 것만이 아니라 무엇인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어떤 위대한 신의 명령이 들어 있다는, 그래서 우리 개체 생명들이 그 생명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 내 머리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생각이 맞는 걸까? 생각해 보니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맞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맞는 편에 비중이 더 쏠려간다.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나?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삶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제 한 몸 잘났다고, 힘이 세다고, 머리가 좋다고 부처님 말씀, 성인의 말씀도 듣지 않고 마구잡이로 살면 그건 죽도 밥도 아니게 되기 십상이다. 그런 현상은 우리 이웃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신은 곧 정신인데 세상에 정신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사람들은 삶의 의무를 잘 알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부지런히 활동해야 한다. “활동, 이것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을 것이요, 많으면 크게 번영하고 적으면 작게 번영할 것입니다.” 옛날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온 바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부지런히 활동하면 잘 살고, 활력 없이 게으르면 잘 살기 어렵다. 정치도, 경제도, 학문도, 종교도 부지런히 활동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종교도, 학문도, 경제도, 정치도 활동이 많으면 크게 번영하고 활동이 적으면 작게 번영한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공부하여 지혜를 깨닫고 실천해야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고, 삶의 장면마다 멋진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적당히 잘 먹어야 한다. 집 밥이 최고라지만 그 형편이 안 되어 매식을 하더라도 메뉴선택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 바쁠 때는 비지(busy)찌개를 먹어도 좋다. 그러나 메뉴를 바꿔 가며, 회를 먹으며 회포를 풀고, 고기를 먹으며 동력을 얻고, 사찰 음식을 먹고 혈행(血行)을 개선하고... 등 우리가 활동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잘 먹어야 한다. 무슨 사회정의를 실현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단식을 하는 것은 좋은 활동이 못 된다. 단식은 위장이 고장 났을 때 위장에 안식을 주기위해 하는 일종의 물리치료일 뿐이다. 한 일주일 굶으면 위장병이 절로 낫기도 한다. 사회정의는 다른 방법으로 구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활동을 해야 한다. 지식을 지혜롭게 하여 다른 생명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해야 한다. 종교인이나 성인군자가 아니라도 이 정도의 활동은 삶의 의무이다. 그런데 어디 삶이 먹고 사는 것뿐이던가. 인간관계를 맺고, 운동을 하고, 연구를 하고, 발명을 하고, 정치를 하고, 기업을 하고, 기록을 하고, 기도를 하고, 우리 삶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이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잠도 자고, 사랑도 하고, 생동감을 얻으면서 정신 줄을 놓지 말고 성실히 살다보면 내 삶의 열차는 어느 새 종착역에, 부산, 목포, 제주, 파리, 런던, 베를린, 뉴욕, 하와이, 베이징, 상하이, 홍콩, 도쿄, 나고야, 인천, 서울, 대전...등 아주 화려하고 쾌적한 글로벌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내리실 때는 물건을 놓고 내려도 좋다. 아니 후손을 위해 모든 걸 다 놓고 내려야 한다. 그러한 종착역은 물질이 필요 없는 극락의 플랫폼일 테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내릴 잠실역에 도달했다. 이제 버스를 타고 인문학도서관에 간다. 삶을 활동적이고 즐겁게 남을 도와가며 사는 것, 그게 우리 삶의 의무(mission of life)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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