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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카톡

2016. 6. 24(금)

카톡

요즘은 SNS에 카톡이라는 게 있어 참 편리하다. 카톡 친구들과 사진, 동영상, 문자 등을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어 그 편리가 손 편지보다 100배는 낫다. 이제 손 편지는 쓸 필요가 정말 없어졌다. 하기야 카톡이 아니라도, 전화, 핸드폰문자, 이메일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와 손 편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군대라면 몰라도.

나는 어제 우리 가족의 옛 자료를 정리하다가 손으로 써서 주고받은 저 편지뭉치를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또 버리지 못했다. 예전에 가족 간에 주고받은 저 시시콜콜한 편지글도 한 300년만 지나면 옛 사람의 서간자료로서 귀중한 기록으로 여겨질지 누가 알랴? 2300년대 후손들이 국어학을 연구할 때, 1950~2000년대 조상들의 한글 맞춤법이 어떻게 변천했으며, 당시 서민들의 국어생활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말하자면 국어학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이런 역사의식이 은연중 작용했나보다.

각설하고, 카톡은 친구들의 마음 상태를 읽을 수 있도록, 사진과 상태 멘트를 게시할 수 있게 해 놓고 있다. 물론 사진을 잘 올리지 않고 상태 표시 멘트도 올리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카톡 친구들은 본인에게 의미 있는 최근 사진과 상태 멘트를 수시로 바꿔 올리고 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나 어디서나 친구들의 그런 사진과 멘트를 쭉쭉 손으로 밀어가며 살펴보는 것도 현생 인류의 심심풀이 땅콩이 됐다. 그런데 며칠 전 카톡 목록을 밀어 올리다가 “내일은 환란이지 평화가 아니다.” 라는 어떤 학생의 상태멘트를 보고 좀 의아해졌다. 40대 후반 아니 50대 초반의 그 학생은 품행이 바르고, 글씨도 예쁘게, 주관식 시험 답안을 잘 쓰는 평생 여학생인데, 이런 멘트를 올리다니, 그 학생의 집안이 요즘 좀 평화롭지 못한 걸까?

개인의 감정과 마음상태는 이제 SNS에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있다. 필자도 SNS 활동을 한지 10여년이 넘었기에 나의 마음상태는 사진자료와 글을 통하여 이미 세계적으로 오픈되어 있다. 나는 지금 네트워크 정보사회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인포머쿠스’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올리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그런데도 이 새벽에 또 이렇게 SNS에 올릴 글을 쓰고 있으니 나는 지금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나의 글쓰기의 목적은 도서관과 사회에 착한 영향을 주는 것, 이 사회 환란을 치유하고, 예방함으로써 평화로운 도서관과 사회를 건설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 뭐 이런 것일 뿐, 돈을 벌려고, 더 유명해지려고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돈이 적다고, 유명하지 않다고 평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화는 마음 씀에 달려 있다. 그 학생의 마음에 어서 평화가 밀려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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