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컬럼

약어

약어

우리는 약어 사용을 좋아한다. 그러나 약어를 쓸 때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게, 말이 우습게 되지 않게, 우리말이 훼손되지 않게 주의했으면 한다. 도서관과 박물관의 명칭도 많이들 줄여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도서관을 ‘국중’, 국립중앙박물관을 ‘국박’,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국어청’ 등으로 부른다. 이중에서 필자가 오해한 약어는 ‘국어청’이다. 국어에 관련되는 관청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립민속박물관을 ‘국민박’, 어린이도서관을 ‘어도’, 어린이박물관을 ‘어박’ 작은 도서관을 ‘작도’라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언중(言衆)의 언어감각이 작용한 결과인가 보다.

영어 약어는 더 알기 어렵다. 신문을 보다보면 영어 약어도 무수히 등장한다. 최근 태블릿 PC에 관한 기사에서 ‘B2B’라는 약어를 사용하던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했다. 찾아보니 ‘Business to Business’라는 것이다. 참 나. to 가 어떻게 2가 되는지?

필자가 회사에 다닐 때 어떤 기관장께서는 결재를 받으러 가면 언제나 기안문에 들어 있는 약어에 관한 질문을 했고, 기안자가 약어의 전체 구성 단어를 모르면 호통을 치고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필자는 LCD에서 당한 적이 있다.

“LCD가 무슨 약자지?”

“리퀴드....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야, 이 사람아, 그런 것도 모르면서 결재 판을 들고 다녀?”

“아이구, 죄송합니다. 알아가지고 오겠습니다.”

 

핀잔을 듣고 약어를 겨우 찾아가지고 다시 결재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LCD는 ‘liquid crystal display’로 ‘액정 표시 장치’였다.

이분의 의도를 좋게 생각하면 약어의 뜻은 잘 모르면서 입에만 익숙하게 사용하는 직원들의 결점을 고쳐주려는 의도, 좀 덜 좋게 생각하면 직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상사의 존재감을 드러내 군기를 잡으려고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필자는 그 후 잘 모르는 약자는 꼭 사전을 찾아보는 습성이 생겼다. 三人行必有我師焉 ! 그분은 나의 스승인 셈이었다. 약어는 약다. 꼭 찾아보고 사용하자.

 

 

'수필/컬럼 >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찰  (0) 2016.05.29
억지로 먹이는 건 사랑이 아니다  (0) 2016.05.22
화엄의 계절  (0) 2016.05.05
로스쿨과 법당  (0) 2016.01.05
골든벨 쐐기문자 문제 오류  (3) 201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