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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화엄의 계절

화엄의 계절

봄이 대지에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꽃 피는 계절이다. 지구 온난화로 계절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이 땅에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선인들이 설정해 놓은 절기도 그 효력이 역력하다. 입춘(立春)엔 여지없이 봄기운이 돌고, 경칩(驚蟄)엔 잠들었던 생명들이 일제히 깨어난다.

이 봄, 특히 음력 사월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달이다. 부처님은 참 복도 많으셨나보다. 꽃들이 만발하는 이 컬러풀한 계절에 인도의 한 작은 나라 왕자로 태어나셨으니 탄생 자체가 커다란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왕자라는 작은 행복을 버리고 인류를 위해 영원한 행복의 꽃씨를 뿌려놓으셨다. 그래서 이 계절 우리는 모두들 행복하다.

우리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가족적, 직업적,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의식주에 힘든 상황을 만나면 쉽게 무너지고 좌절하기도 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희비(喜悲)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의 행복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어려운 시험에 대비하여 항상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살다보면 그게 잘 되던가?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또 미루기 일쑤다.

필자도 말은 불자(佛者)라면서 한동안 공부를 게을리 했다. 여러 가지 인간적 어려움을 감내하며, 정신적으로 방황했다. 여기 저기 다른 종교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불교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금년 3월 좋은 책 두 권을 발견했다. 하나는 한용운 스님의『불교대전』(1913, 범어사 간행,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이고, 다른 하나는 월호스님의 화엄경 약찬게 강설』(2016, 조계종출판사 간행)이다.『불교대전』은 일제강점기 때 한용운 스님이 방대한 불교경전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핵심적 내용을 정리하고 현토한 책이다.『화엄경 약찬게 강설』은 용수보살이 화엄경의 골수만을 골라 108행의 게송으로 간략히 줄여 놓은 것을 월호스님이 쉽게 풀어 해설한 책이다. 필자는 이 책들의 한문 원문을 사경하기로 했다.

우리가 이 땅에 생명을 받아 누리는 것은 그 자체로 행운이다. 게다가 이 좋은 계절에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다 아름다운 꽃으로 인정하시고, 예뻐해 주시고, 심오한 연기(緣起)를 가르쳐 주시니 우리는 부처님으로부터 무한한 동기부여를 받고 있는 셈이다. 화엄(華嚴)이란 ‘꽃으로 장엄한’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니 우리는 부처님의 그 깊은 뜻을 가슴에 아로새겨 아름다운 마음 꽃과 웃음꽃을 함께 피우며 열심히 정진하며 살아갈 의무가 있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 곁에는 언제나 꽃이 있다. 그리고 우리들 곁에도 언제나 꽃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꽃들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민들레도, 패랭이꽃도, 개나리도, 튤립도, 여성도, 남성도 다 나름 아름다운 꽃인 것을 우리는 이 계절에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 아름다워지기 위해 콧대를 좀 세우는 것도 너그럽게 용인하고 싶은 마음이 인다. 그런데 코를 세울 때 화엄의 마음도 같이 세웠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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