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컬럼

실사구시의 도서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도서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책 『월든』에는 독서에 대한 명언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나에게 감명을 준 구절은 “때때로 터져 나오는 웅변가의 열변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글자로 기록된 가장 고귀한 말들은 일시적인 구어(口語)보다는 훨씬 높은 차원에 있다.”(120쪽)와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릿또릿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다.”(123쪽)이다. 이 글을 읽어보니 나 자신 얼마나 참다운 독서를 해왔는지 뜨끔해졌다. 우리 주위엔 독서를 권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학부모님을 위시하여 선생님, 교수님, 그리고 우리 사서님들.... 여기엔 필자 자신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책 읽기를 날마다 권장하고 있는 여러 선생님들은 얼마나 참다운 독서를 실천하고 계시는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어떤 책이 왜 좋은지 소상하게 북토크라도 하고 계시는지, 생각해보니 나 자신 부끄러움이 앞을 가렸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도서관의 역할은 사회 각계각층이 내실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서들은 고객들에게 좋은 책들의 내용을 소상하게 안내함으로써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말이 보편적으로 잘 실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서들은 날마다 책을 만지며 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어루만지고만 있다. 정리하느라고, 분류하느라고, 대출 반납하느라고 ..... 그래서 고객의 눈에 비치는 사서들의 모습은 ‘책 정리하는 사람’, 한가하게 ‘책이나 보는 사람’ 등으로 각인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사서들이 각기 주제전문성에 따라 책을 골똘히 읽고, 서평을 쓰고, 북토크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사서들이 실력이 있다는 평가도 이런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천할 때 쌓일 수 있다고 본다. 흔히 책 소개 또는 문사철文史哲 프로그램 등은 저자 또는 해당분야 전문가나 교수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일의 일부를 사서선생님들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대학에서 독서지도론이나 장서개발론 수업을 맡으면 언제나 서평과제를 부과한다. 본인의 주제전공이나 선호에 따라 5권의 책을 선정하여 서평을 쓰게 하고, 이를 북토크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발표까지 시킨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이러한 북토크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실행해 볼 것을 권장한다. 덕분에 필자는 예비사서들이 쓴 많은 서평을 읽어보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도서관이 현대문명사회에서 ‘실사구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스스로 ‘시민의 대학’이라는 사명을 확고히 실행해야 한다. 사서들은 스스로 ‘시민의 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실질적으로도 ‘시민의 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도서관의 위상, 사서직의 위상이 낮다고, 그리고 이 모든 문제가 제도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고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도서관과 사서의 위상을 제고하는 실천적인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의 역사와 철학은 ‘사서는 교육을 받은 자’, ‘사서는 교육자’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의 도서관들도 그 뿌리와 정신을 역사와 철학에서 찾을 때 도서관이 진정 ‘실사구시의 도서관’ 으로서 그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