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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도서관과 책의 위상, 그리고 <책방송>

 

도서관과 책의 위상, 그리고 <책방송>

 “책은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책을 독자에게로” 1930년대 인도의 도서관학 석학 랑가나단(S. R. Ranganathan) 선생의 도서관학 5법칙에 나오는 중요한 법칙이다. 이러한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도 ‘촌스러운’ 법칙을 모르는 사서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도서관 현실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법칙들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말씀인데, 현실에서는 잘 실천되는 것 같지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앵커처럼 말하기” 프로그램에 한 학기동안 수강생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한 조수빈 아나운서는 매주 좋은 책 한권씩을 추천하여 수강생들에게 읽을 것을 권했고, 가능하면 읽은 책을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잘 실현되지 못했다. 수강생들 중에는 "추천한 책을 보니 맨 뻔한 얘기만 써 있더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조아나운서는 “뻔한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뻔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침이었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필자는 속으로 “과연 뻔한 것이 중요한 거지”하고 맞장구를 쳤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는 말과 같이,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수없이 들었던 ‘촌스러운’ 말들이 바로 진리이며, 이러한 말씀은 실천을 통해서 빛을 발하게 된다. 모든 책은 이용하기 위해 존재하며, 모든 책을 독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할 때 도서관은 빛을 발할 수 있다. 폐가제에서 개가제로 바꾼 것은 이러한 진리를 부분적으로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책들은 접근이 불편한 폐가 서고에 들어 있고, 어떤 도서관은 책을 장식품처럼 ‘높아도 너무 높은’ 서가에 진열해 놓은 경우도 있어 개가제의 의도를 무색하게 한다.

책은 장식품이 될 때 위상이 낮아진다. 북 카페에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책들, 쇼윈도에 안경 받침대로 책을 펼쳐놓은 모습은 일반인에게는 멋있게 보일지 모르나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북 카페의 원래 의도가 커피와 경양식을 판매하는 수익사업에 있다고 해도, 책(book)이라는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할 경우에는 고객들이 책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수서, 정리, 북토크 등 도서관의 기본 서비스를 실시하는 것이 책의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다.

도서관 진리의 실천은 중앙의 정책 문제만은 아니다.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모든 도서관의 관장님들, 사서 및 직원님들, 책을 이용하여 영업을 하고 있는 북 카페 업주님들, 주민 센터 마을문고의 책을 관리하는 공무원님들, 자원봉사자들, 나아가 모든 시민 여러분들이 책과 도서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책마인드를 가져야만 평범한 진리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일이 공동의 책임일 때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인식전환은 매우 어렵고, 컨센서스의 형성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푸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도서관 마케팅이다. 도서관이 다양한 마케팅 채널을 개발하여 날마다 시민과 소통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출판계와 도서관계의 협력 사업으로 시도되고 있는 ‘책방송’설립 추진은 매우 고무적인 뉴스로 다가온다.

 (글. 이종권, 월간 라이비러리 & 리브로 201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