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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도서관의 공부방 딜레마

도서관의 ‘공부방’ 딜레마dilemma

우리 사회도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다.” “도서관은 조용한 곳이다.” 이러한 전통적 인식들이 2000년대 이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는 그동안 도서관계에서 대다수 도서관들이 주로 수험생들의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도서관을 진정한 시민문화공간으로 육성하고자 노력해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민간 어린이도서관이 늘어나면서 도서관을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가지고 노는 장소, 책과 친해지는 장소, 책을 활용하여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장소로 운영하고 있는 것도 도서관에 대한 인식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 시민들은 도서관이 공부방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도서관의 목적, 특히 공공도서관의 목적은 도서관의 소장 자료를 이용하여 시민들의 자발적 평생학습을 돕고, 여가활동을 통한 교양 증진과 문화적 수준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학생들과 수험생들의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들이 열람실을 없애거나 줄이려고 하면 이용자들의 불만이 일어나고 나아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것이다.

그런데 한발 물러서서 도서관은 ‘사회적 산물’이며, ‘사회적 존재’라는 큰 틀에서 보면 도서관은 사회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요구는 다양하기 마련이지만 그 다양한 요구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요구를 무시해 버린다면 도서관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들은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의 목적과 본질은 확실히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이 문제를 풀어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가까운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서, 원고를 쓰기 위해서, 또는 번역을 하기 위해서 등 이용 목적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늘 불편을 느끼는 것은 도서관에서는 나의 자료와 도서관자료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자료실에는 내 책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결국 열람실을 이용하게 되는데, 열람실에는 도서관 자료가 없어 불편하다. 결국 자료실에서 책을 대출받아 열람실에서 볼 수밖에 없다. 도서관은 도서관자료를 이용하는 곳인데 이를 이용할 편리한 공간이 없으니 자가당착自家撞着인 것 같다.

사서들은 다른 도서관들을 좀 이용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 이용을 해보면 무엇이 불편한지를 느낄 수 있다. 필자가 사서로서 도서관들을 이용해본 결과 우리의 현실에서는 도서관은 조용한 공간도 필요하고, 조금 시끄러운 공간도 필요하다. 도서관은 이용자들의 연령대에 알맞은 자료와 공간을 편리하게 제공해야 한다. 사서들이 배워왔던 랑가나단 선생의 도서관 철학을 현재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도 가끔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실 공부방 문제는 어쩌면 논란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도서관들이 공부방을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공부하러 오는 이용자들에게 더욱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자료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길이 아닐는지? 도서관들이 인력 부족, 운영시간 연장문제 등 예산과 연관되는 난제들이 맞물려 있어 어렵겠지만 그들의 고객인 이용자를 배려한다면 열람실과 자료실을 통합 운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 종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