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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도서관장 보임의 ‘이론’과 ‘실제’

 

도서관장을 누가 담당하는 것이 좋은가? 이러한 질문은 단적으로 말하면 우문愚問에 속한다. 이는 초ㆍ중ㆍ고등학교의 교장은 누가 담당하고, 대학의 총장은 누가 맡아야 하는지, 법원장은 누가, 검찰청장은 누가 맡아야 하는지 등과 동일한 종류의 물음이기 때문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학교장은 교사가 승진하여 맡고, 대학 총장은 교수가, 법원장은 판사, 검찰청장은 검사가 승진하여 각기 그 전문성에 따라 해당 기관을 경영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서관장 자리로 오면 사정이 달라져서 위와 같은 당연한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따로 노는 법과 현실

도서관법 제30조 1항에는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다. 위와 같은 당연한 상식이 현실적으로 잘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법으로까지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을 신설할 당시 입법연구자들 사이에 수많은 토론과 논란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굳이 이런 문제까지 법률로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서직과 도서관의 전문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이렇게라도 법률로 정해 놓으면 도서관의 본질 구현을 위한 경영 질서가 잡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투영된 조항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법조항의 표현은 매우 엉거주춤하다.

그런데 이 법조항은 신설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필자는 어느 지역에서 분기 1회 개최되는 공공도서관장 협의회에 참석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협의회에 참석하는 공립 공공도서관장들이 사서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공립 공공도서관장의 십중팔구는 사서자격이 없는 일반직 공무원들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퇴직 무렵에 잠시 쉬어가는 한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배려차원에서 발령을 받은 분도 더러 있었다. 법은 제대로 작동되어야 마땅한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상황은 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

사실 도서관관련법들은 강제성이 매우 약하다. 도서관에 관련한 법과 정책은 장려 및 조장정책에 속하기 때문인지 학교나 행정기관들이 도서관법과 정책을 잘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법적 제제를 받지 않는다. 도덕은 자율성, 법은 강제성이 특징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법률에 따라서는 선언적 의미 또는 임의 조항이 많아서 해당 기관들에게 하나의 가이드라인은 될지언정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의 “사서직으로 임명한다”는 법 조항은 그 자체의 표현도 애매할 뿐 아니라 사서직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조처해야 한다는 실천보장규정이 뒤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의무사항도 강제사항도 아니어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이나 기관장들은 “관장은 행정경험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서를 관장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당연시여기고 있다.

 

사서들도 리더십 길러야

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니 사서들은 답답하다. 사서들에게 도서관장 보직을 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서들에게 높은 자리를 보장해 달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적어도 다른 전문기관과 마찬가지로 도서관도 그 본질적 전문성을 유지하고 도서관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수행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문헌정보학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도서관의 역사적 본질과 사서직의 전문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사서들도 이러한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초임 때부터 스스로 도서관 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사서들이 순종을 넘어서 소통과 융합의 리더십을 철저히 배양해야 한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우선은 공식적인 관장 보직을 받지 못하더라도 사서들은 스스로 ‘셀프 관장’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글. 이종권) <월간 라이브러리 & 리브로 2013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