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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 공부, 공부... 도대체 공부가 무엇이 길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공부, 공부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공부하라, 공부하라, 수없이 들어왔던 소리, 학생들을 가르친답시고 공부하라, 공부하라 수없이 훈계했던 그 소리, 내일을 위해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수없이 다짐했던 그 소리다. 그런데 공부가 무엇인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했나, 공부가 무엇인지나 알고 공부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나, 그리고 말로만 공부, 공부 하면서 실제로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나? 의문이 꼬리를 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켕겨온다.

 

공부의 사전적 의미

그래서 '공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요즘은 무료 인터넷 ‘오픈엑세스’ 사전이 있어 사전 찾기도 참 편해졌다.

"다음daum 국어사전 : 공부(工夫) ;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 배우고 익히다. <관련숙어> 공부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 한다. : 지식을 넓히고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생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학습해야 함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어쩐지 의미가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공부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 국한된다면 종교는 공부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학문이나 기술이 매우 포괄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하더라도 그것만이 공부의 전부라면 우리 인생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게다가 위의 사전적 풀이는 공부라는 한자어 工夫에 대하여 아무런 의미 해석이 없어 그 어원이 궁금하다. 그래서 다시 한자사전을 찾아보았다.

“다음 한자 사전 : 工夫, ; 장인 공, 장인(匠人). 주로, 기능공·예술인 등에 쓰임. 교묘하다. 교묘하게 만듦. 일. 만드는 일. 악인(樂人). 벼슬아치. 베 짜는 사람. 점쟁이. 공(功). 공적. 획수 3, 부수 工. ; 지아비 부, 지아비. 남편. 사내. 장정(壯丁). 일꾼. 병사. 다스리다. 획수 4, 부수 大.”

그런데 工과 夫의 두 글자의 뜻을 아무리 조합해보아도 공부가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도대체 뭔 말이고 뭔 뜻인지? 공부(工夫)라는 한자에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 들어 있지 않는데 그 의미가 들어 있다고 국어사전은 우겨대고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한 TV 대중 강좌에서 공부를 중국의 무술 쿵푸와 통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무술 쿵푸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다음 국어사전 ; 쿵푸(gongfu, 功夫) ; 중국 무술의 하나, 주로 무기 없이 손과 발을 이용하여 행하는 개인 격투 방식” 한자사전 功夫 ; ; 공 공. 공로. 국가에 대한 공. 공력. 일의 보람. 공치사하다. 공을 자랑함. 일. 직무. 사업. 명예. 성적. 공교하다. 좋고 단단함. 복(服). 오복(五服) 제도의 하나. 대소공(大小功)이 있음. 대공은 9개월, 소공은 5개월 복임. 경대부(卿大夫)가 입는 옷. 획수 5, 부수 力.” 夫는 앞의 工夫에서 찾아보았으므로 생략.

‘쿵푸’에서는 체력을 연마하고 정신을 수양한다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은 나오지 않는다. 한자의 여러 가지 공부(工夫, 功夫)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공부의 진정한 의미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미문자인 工夫, 功夫를 버리고 그냥 순우리말로 ‘공부’라고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의 현실적 의미

이렇듯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어학사전으로는 알 수가 없으니 우리 스스로 공부의 의미를 연구하고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고, 하고 있고, 미래의 인재들에게 권장하는 방식으로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는 대체로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학교 공부요, 다른 하나는 인생 공부다. 그러나 학교 공부도 장기적으로는 인생 공부로 연결된다. 학교공부는 인생 공부의 부분집합이다. 모든 공부는 결국 인생 공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학교에서 교과 공부를 잘 한 사람이라도 인생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또한 학교에서는 공부를 별로 못한 사람이라도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전자는 학교공부를 잘했어도 결국 ‘헛공부’를 한 것이고, 후자는 학교공부를 못했어도 결국 ‘참 공부’를 한 것이다. 공부란 모든 것을 참되고, 바르고, 자연스럽게 하는 정신과 육체의 단련이 아닐는지?

 

진정한 공부

며칠 전 SBS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2012년 8월 30일(목요일) 밤 9시부터 50분간 방영)에서 81세의 할아버지가 혼자 공부를 하여 영자신문을 읽고, 오바마의 연설문을 외워 쓰고,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을 푸는 모습이 나왔다. 스카이대 학생들과 영어단어 암기력 테스트를 했는데 20문제 중 15문제를 맞췄다. 사람들은 모두들 “할아버지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부인인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공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큰 기대를 했지만 별로 이득이 되는 것이 없더라는 것이다.

공부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방송에서도 보고, 김용옥 교수한테서도 듣고, 또 나 지신 공부한답시고 평생을 이러고 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부는 다 ‘헛공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한참동안 허탈감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공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결론을 지어야 하겠기에 나의 정신과 육체를 총 동원하여, 그리고 60평생 살아온 나의 ‘일천’한 공부 경험을 총 동원하여 진정한 공부란, 그리고 진정한 공부의 태도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대로 정의를 내려 보고자 한다.

진정한 공부란 첫째로 가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본다. 배운 사람들 중에는 너무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점잖은 척 하면서도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조금 아는 걸 가지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포장하여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한다. 그러면서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

둘째로 남이 하는 공부에 대하여 냉소주의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원로(학자나 종교인을 막론하고)분들 중에는 제자나 다른 소장 학자들에 대하여 “제까짓 게 뭘 안다고” 라며 핀잔 섞인 말들을 더러 한다. 또 원로가 아니라도 다른 학자의 글이나 논문, 또는 저서를 보고는 내용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덮어버리면서 자기 아집에 빠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 것 같다.

셋째, 그래서 진정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겸양의 미덕부터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알아도 배우는 자세로 대하면 하나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다 안다고 다른 사람의 설명을 차단해버리면 모르는 것이 있어도 알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설명을 잘 들어보노라면, 쉬운 책이라도 잘 읽어보노라면 그 행간에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심오한 그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국어, 영어, 수학, 정치, 경제, 자연과학, 철학, 종교, 인생 그 어떤 공부를 하든 가식과 냉소주의를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공부해야만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공부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너와 나를 이해하는 공부, 너와 내가 소통하는 공부, 너와 내가 웃음 짓는 공부

세상과 소통하는 공부, 세상을 밝게 하는 공부, 세상을 맑게 하는 공부

자연과 소통하는 공부, 자연을 존중하는 공부, 자연과 상생하는 공부”

 

어떤 공부를 하던 우리 앞으로 이런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순耳順에 이르러 크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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