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컬럼

도서관과 구두


"솔 솔 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한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70 80년대에 유행한 “빨간 구두 아가씨”라는 노래가사다. 당시의 구두는 거의가 종이에 발을 대고 굵은 연필로 발모양을 본 떠 맞춰 신는 수제화로 값이 비싸 웬만한 선남선녀들은 구두를 맞춰 신기가 쉽지 않았다. 기성화도 있었지만 발에 잘 맞지 않고, 또 처음 신으면 발이 아프기 일쑤였으며, 쉽게 터지고 떨어졌다. 그래도 도시로 외출할 땐 삼촌구두, 아버지 구두, 이웃집 아저씨 구두를 빌려 신는 경우도 허다했으니 정말 어려운 시절..... 남 녀 모두 결혼이나 해야 큰 맘 먹고 겨우 구두 한 켤레씩을 맞춰 신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수제화는 점점 사라지고 유명메이커의 기성화들이 등장했다. 십 여 년 전부터는 기성화도 품질이 아주 좋아 유명메이커는 명품이 되었고, 값도 매우 비싸 웬만한 구두는 몇 십 만 원을 줘야 사 신을 수 있게 되었다.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도 몇 십 만원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지금이 인간세상인지 돈 세상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도서관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면서 나는 아주 ‘좋은’ 구두를 발견하였다. 중소기업인 그 구두 회사는 도서관을 위하여 문화재단까지 만들고 한국사회과학도서관을 설립하여 직접 운영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에스콰이어 구두회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에스콰이어 이인표 사장은 전국의 오지마을과 외국의 조선족 오지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을 지원하는 운동도 열성적으로 펼쳤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부터 에스콰이어 구두만을 사 신고 다니며, 학생들에게도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며 신발 자랑을 하고 있다.

한편 도서관에서는 구두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다. 특히 여성들의 하이힐은 걸을 때 유난히 소리가 크게 만들어 진 모양이다. 어떤 여성들은 조용한 도서관 내에서도 다른 이용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똑 똑 똑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 다녀 신경이 예민한 이용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도서관 사서들도 구두소리를 내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용자를 배려하는 도서관에서는 통로에 양탄자를 깔아서 구두 발자국 소리를 방지하기도 하지만 아직 국내 대다수의 도서관에서는 예산 사정 때문인지 통로에 양탄자를 깔지 않았다. 여성들 스스로 조심해 주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최근 한 구두회사의 사장의 성공담이 인터넷과 방송을 타고 퍼지고 있다. 그 분의 성공담을 담은 책도 출간되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만으로도 열정과 노력이 대단한 경영인이라는 걸 알만하다. 사업 뿐 아니라 좋은 일도 앞장서 행하고 있다한다. 형편이 어려운 골프 꿈나무를 지원하고, 명문대학에 경영특강도 하며, 젊은이들에게 비즈니스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경영에 성공하고 사회를 위해 기부하고, 좋은 일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데 나는 세상물정이 어두워 그 구두가 값이 얼마정도 되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안다고 해도, 그 구두가 편하고(comfort) 값이 적정하다 해도 도서관을 사랑하는 에스콰이어가 존재하는 한 나는 에스콰이어를 계속 고수할 것 같다. 아마 안토니 바이네르의  “불타는 구두” 가 도서관을 사랑하게 된다면 마음이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신발 사장님들 파이팅입니다.




'수필/컬럼 >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와 부활  (0) 2012.01.31
오시장은 멋지다  (0) 2011.08.26
명품과 짝퉁  (0) 2011.08.09
트위터를 탈퇴했다.  (0) 2011.08.02
KBS 취재파일 4321 '도서관에 책이 없다' 시청소감  (0) 201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