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포착의 인격
인격은 순간적으로도 포착된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도 순간적으로 인격을 포착할 수 있다. 물론 잘못 판단할 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인격이 그 사람의 진면목일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 포착의 인격은 학자든 종교인이든, 처음으로 어떤 자리에 동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최근 여러 사람들과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학자, 종교인, 학생 등 활동분야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여행했다. 우리 여행단은 대체로 세 그룹으로 구성되었다. 한 그룹은 모 대학 동문, 한 그룹은 종교인, 또 한 그룹은 시골 중학교 동문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이들을 연결 지어주는 여행단장이 계셔서 분위기가 그런대로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이질적인 그룹이 함께 여행을 해보니 그룹마다 특색이 있고, 특히 각 그룹의 인격적인 면이 순간순간 포착되었다.
수행에 몸이 배어있을 것 같은 종교인들은 정말 잠이 많았다. 버스에서 비행기에서 열차에서 틈만 있으면 골아 떨어졌다. 앉아서 잘 수 있는 ‘ㄷ자’형 머리받침대 베게까지 준비하여 줄기차게 잤다. 야외에 다닐 때는 큰 모자를 쓰고도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 피부 보호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른 그룹과는 대화가 별로 없었다. 뭘 물어보려 해도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도 종교적인 이야기도 그들과는 대화를 틀 수 없었다. 유람선을 탈 때는 호들갑을 떨고 소리치는 분도 있었다. 포교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런지는 몰라도 여느 속세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 속인보다 오히려 더 우스운 행태를 보였다. 더욱 심한 것은 논문심사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교수님 ‘눈도장’을 찍으러 여행에 동참했다는 ‘자기소개의 변’이었다.
모 대학 동문 그룹은 그들대로 특색을 보였다. 실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말로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들어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 표정과 행동에서는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매우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진지한 대화, 상대를 존중하는 인간적인 분위기는 그리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끼리는 동문 선후배라는 인식 때문에 농담 반 진담 반 그런대로 잘 통하는 것 같았다.
중학교 동문그룹은 수가 적어서 그런지 여행단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단장님과 또 한분의 동문이 대학동문 그룹에 속하여 여행단을 리드했으므로 별로 이질감이 느끼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번 여행단에서 종교인이나 대학 동문들이 다른 그룹에 대하여 조금만 더 인간적이고, 조금만 더 겸손하고,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순간포착의 인격은 매우 개인적이다. 면접에서는 이 순간포착의 인격이 중요하다.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는 단시일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화하는 것이 상책인 것 같다. 종교인은 종교인의 인격으로, 교수는 교수의 인격으로, 학생은 학생의 인격으로 다듬어가야 할 것이다. 누구든 지식을 취하되 아집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겸손과 친절은 누구나 갖추어야 할 인격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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