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이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은 시공간적 존재이다. 지구, 산과 들, 나무, 인간, 동물 어느 것 하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는 없다. 이는 당연한 ‘물리(물질의 이치)’라 하겠다. 그런데 또 자네 무슨 소리 하려고 그 당연한 ‘물리’를 끄집어내는가?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물리(物理)’에서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오류일 수도 있음을 경험해왔다. 예를 들어 천동설이 그렇다. 지구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돌아간다는 이론이 ‘천동설(天動說)’이다. 그런데 그러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물리’의 법칙이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태양(太陽)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간다는 새로운 ‘물리’, 즉, 지동설(地動說)로 선회한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욱 행복할 경우가 많으며, 진리(眞理)에 접근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위의 천동설은 인간이 위치하는 자리, 즉 지구의 입장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러나 지동설은 지구 밖 다른 천체(天體)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한 결과 발견한 진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시간과 공간사물의 이치도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시간이 가고 있어 인간과 사물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면 사물에 변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놈의 세월’ 때문에 늙어가고, 세월이 지나면 새 것도 헌 것이 되고, 그래서 시간이 움직이고 있어 사물이 변한다는 ‘자기중심적’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시간은 가만히 있는데, 인간과 사물이 움직여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구물리학에서 ‘천동설’로부터 ‘지동설’로 진리가 바뀌었듯 ‘시공간의 물리학’에서는 ‘시동설(時動說)’에서 물동설(物動說)로 선회되지는 않을까? 생각할수록 의문이 인다. 무슨 ‘종페르니쿠스(종권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인지는 몰라도 한번 심각하게 사유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여겨졌다.
하루살이(day fly)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지’ 모른다. 하루살이에게 하루는 100년일지도 모른다. ‘하루’라는 시간은 인간이 정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 중심으로 정한 시간은 모든 사물에 일반화시킬 수 없다. 거북이가 1천년을 산다고 거북이 입장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고 할 것인지도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시간은 인간이 인간중심으로 편의상 정한 것으로서 모든 ‘물리세계’에 통용되는 ‘진리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전개해보니 정말 우리 인간은 우주 속에 ‘하루살이’ 같은 ‘한 점’이라는 것, 우주는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십 수백 억 만겁의 세월동안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 다만 움직이는 것은 우주공간에 있는 인간과 사물이며 그들끼리 설치고 다니면서 ‘호들갑’을 떨지만, 우주에서 볼 때는 거대한 허리케인도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것이라는 상상이 왔다.
그런데 이러한 ‘기발한’ 나의 상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미 깨닫고 설파하신 진리라는 것을 알고 나니 다소 허탈감이 왔다. 그리고 위대한 선각자의 통찰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지 못한 점이 부끄러워진다. “생(生)과 사(死)가 하나요, 공(空)과 색(色)이 다르지 않으니,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니라. 시간은 수십억 만 겁 다하도록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니 우리 인간들이 자등명(自燈明)하여 우주와 한 몸 되어 서로 보시하고, 모든 생명 존중하며 영원히 살아가야 되느니라. 이것이 곧 극락세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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