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부르고 !
직장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아마추어들의 체육 행사는 대개 축구, 배구, 족구, 줄다리기, 마라톤 등으로 구성된다. 다들 아마추어인데 개중에 선수출신도 더러 있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선수는 단번에 눈에 띈다. 축구선수 출신은 혼자서 공을 요리하고 다니며, 배구선수 출신은 공을 독판 받아넘긴다. 그러나 여러 명이 뛰는 구기 종목에서는 특출한 선수가 한명씩 있다 해도 다른 구성원들의 협동적 역할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출신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들의 운동 경기는 프로에 비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실수하는 것도 재미있고, 엉성한 동작들도 가지각색이어서 웃음을 자아낸다. 어느 체육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필자는 한 배구 경기를 관전하다가 정말 배꼽을 잡고 웃어본 적이 있다. 아마추어들의 배구 경기란 일단 공이 공중으로 치솟으면 우왕좌왕하다가 서로 부딪치거나, 공을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바라만 보거나, 공을 어이없는 곳으로 패스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흔히 공이 공중으로 올라가면 관중들이 옆에서 거들어주는 소리가 있다. 곧 “마이 부르고”이다. 공의 움직이는 위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마이”하고 소리치면 다른 선수들이 비켜서 공을 잘 처리하도록 하라는 일종의 훈수이다.
그런데 우리를 웃긴 것은 아마추어들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이 부르고”때문이었다.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한 여직원이 관전을 하다가 큰 소리의 서울 말투로 “마이 부르구”를 연신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관전하던 경상도출신 남자 직원이 그 여직원의 서울 말투를 흉내 내어 “마이부르구”를 외쳤다. 흉내 내기가 서너 차례 반복되자 그 여직원은 약이 올랐는지 웃으면서 그 남직원을 쫒아갔다. 그러자 그 남직원은 웃으면서 줄행랑을 치기 시작 했다. 남직원은 도망을 가면서도 “마이부르구”를 계속 외쳐댔다. 웃다가 힘이 빠졌는지 추격전은 50미터 쯤 가다가 끝이 났지만 다른 직원들도 덩달아 웃느라 배구경기는 보지 않고 그들의 추격전을 구경하며 웃었다.
이렇듯 아마추어들의 운동경기는 운동 경기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구성원들의 화합과 단결로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배구경기 참가자들이 ‘마이’를 외치는 것은 그들의 역할 분담, 협조와 단결의 정신을 실행하는 것이다. 관전하는 사람들이 편을 갈라 서로 자기네 편이 이기라고 응원하면서 “마이 부르고”, “마이 부르고” 외쳐대는 가운데서도 화합과 단결의 감정이 녹아있다. ‘마이 부르구’를 흉내 내다가 서로 쫓고 쫓겨도 그 속에서는 천진하고 아름다운 인간성이 표출되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 그 이후에도 서로 친근하고 돈독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니 그들도 이제 40줄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 그 성질은 그때처럼 천진하고 싱싱하게 남아 있으리라.(200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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