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석가탄신일이 왔다. 지금으로부터 2552년 전에 열반한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 불자들이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석존께서 처음부터 위대한 부처가 된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영화, 고뇌, 번민, 고행 등 온갖 경험을 통하여 어느 순간 우주의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우리들에게도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 우리 역시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석존처럼 깨달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믿고, 따르고, 실천하면 부처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부처님처럼’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부처님의 법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불법(佛法)을 이해하고 깨우치기도 어려운데다가 이를 평생 실천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특히 물신주의(物神主義)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이 일반 대중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 정도로 마이동풍(馬耳東風)되기 일쑤이다. 젊은 학생들에게 불경 운운하다가는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여기기 십상인 것 같다. 불교의 경전이 어려운데다가, 한문투성이요, 한글 경전이라 하더라도 현대 말에 잘 맞지 않아 고루한 표현이 많다. 또한 불교의식도 근본 교리와는 잘 맞지 않아서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자손 출세하게 해달라고’,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조상님들 좋은 곳에 가게 해달라고’ 소원 비는 기복신앙으로 비쳐지는 측면도 불교의 이해에 오해를 준다.
엊그제 고창 선운사에 갔을 때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20여명이 함께 갔는데, 일행 가운데는 불자도 있고, 다른 종교인, 그리고 종교가 없는 회원도 있었다. 20대, 30대, 40대, 50대가 섞여 있었다. 절에 갔으므로 필자는 불자로서 자연스럽게 법당에 들에가 성의껏 공양하고 절을 올렸다. “저희도 부처님처럼 탐, 진, 치가 없는 큰마음으로 자비롭게 극락에 이르게 하소서.” 내 모습을 보고 있던 20대 친구가 카메라의 줌을 당겼다. 법당을 나와 그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불교와 절에 대하여 호감이 가는지, 불교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는 불교에 관심이 있는 것 같던 그 젊은이의 대답은 딴판이었다.
“불교요? 별로 관심 없어요. 우상숭배라고도 하잖아요? 아, 그거 하나는 알아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니요.”
“그럼 그 말도 아시는 게 아니네요. 내가 좀 경험해 보니 불교는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종교인 것 같아요. 우상숭배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깨달으신 불보살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깨달음을 이루어 가도록 돕는 불교의 ‘교육미디어’라고 할 수 있지요. 반야심경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는 ‘가세가세 건너가세 저 피안 진리의 세계로’ 정도의 뜻이지요.”
“네. 그런데 저는 별로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 젊어서 그런지.”
“네, 그렇군요. 나이가 더 들면 아마 절실하게 다가올지도 모르지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꾸 이야기를 하면 귀찮아 할 것 같았다.
나는 사찰 경내를 돌며 약수도 마시고, 예쁘게 핀 동백꽃, 산수유도 카메라에 담았다. 이렇게 맑은 물처럼, 저렇게 예쁜 꽃처럼 내 마음을 가꾸며 불교공부도, 전공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많은 경전들을, 그것도 한문경전들을 어떻게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절에 가서 법문을 듣지만 법문은 대부분 어떤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드물며, 여기저기서 한두 구절 가져와 한 시간 말씀하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래도 절에 다녀야 법문이라도 듣지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스스로 쉬운 경전부터 차근차근 읽고, 쓰는 것이 가장 상책일 것 같았다. 불교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경전을 읽고, 쓰고, 또 더욱 중요한 것은 배운 바를 실천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일반인들에게도, 타 종교인들에게도 불교가 기복신앙이나 우상숭배로 비쳐지지 않고 진실한 삶의 종교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이나 부처님 가르침의 한 부분이라도 참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마음의 탄생(naissance)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 부처님의 정신이 다가오는 것처럼 모든 불자들의 마음과 내 마음에 항상 '마음 르네상스(mind renaissance)'가 피어나기를 염원한다.(화계법보 2008.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