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이라. 우리가 흔히 듣고, 쓰는 말이다. 무슨 일을 할 때나 길을 갈 때 가장 손쉽게 빨리 하거나 빨리 가는 방법을 ‘지름길’이라 한다. 그런데 그 어원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름길’이란 원의 ‘지름’에서 나온 것이라는 확신이 왔다. 달리 ‘지름’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사전에도 없다. 다만 경상도 방언에 ‘지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기름’을 의미한다.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을 경상도에서는 ‘참지름’, ‘들지름’, ‘콩지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원을 모르면서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어원을 알고 쓰면 그만큼 재미도 있고, 말할 맛도 나며, 아는 척할 자심감도 생긴다. 그래서 어원을 아는 것은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언어는 어원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하다 못 해 영문 약자도 그 원 단어를 모르면 의미를 모른다. 예를 들어, 필자는 일산에 사는데, 교외로 조금만 나가면 파주시 영역이다. 파주 안내 간판에는 'G&G 파주‘ 라고 쓴 큰 간판이 자주 보이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 없다. ‘G&G파주’라면 ‘지지파주’로도 읽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파주가 아기 말로 ‘지지’라는 뜻인가?
그래서 일상 언어를 쓸 때에도 어원의 검토가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지명도, 사람이름도, 학교이름도, 모든 낱말도 다 어원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 어원을 제대로 알고 쓰면 그만큼 명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고, 실수나 오해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원을 알고 말을 골라 쓰면 개인의 품위와 마케팅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좃나’라는 어원을 안다면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이 그 말을 쓰지 못할 것이다. 품위가 떨어짐은 물론, 개인의 지적 수준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길을 가든 지름길을 가고자 한다. 도형에서의 ‘지름’은 원호의 한 점에서 중심점을 가로질러 다른 호의 한 점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연결선이다. 그 선 말고는 아무리 가깝게 잡아도 더 단축되는 길이 없다. 그야말로 ‘지름길’인 것이다. 도형에서는 ‘반지름’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일상 언어에서 ‘반 지름길’이라는 말은 없다. 왜 그럴까? 이는 목적지가 ‘절반’인 경우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형에서는 반지름이 있지만, 실제의 생활에서는 반지름은 목적 달성을 못하는, 중간에 머무는 수준이기 때문인가 보다.
우리는 지름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만약 ‘반 지름길’을 간다면 원점에서 중지되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지름길은 목적을 향한 수월한 길이지만 ‘반 지름길’은 ‘가다가 중지 곧’ 하는 길이므로 ‘아니 감만’ 못하다. 그래서 ‘지름길’이라는 말은 있어도 ‘반지름 길’이라는 말은 없는가 보다. 우리 말 어원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의미심장한가?(2008.3.9)
댓글의 의견을 보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지르다'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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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사) 목청을 높여 소리를 크게 내다.
2.(동사) 팔다리나 막대기 따위를 내뻗치어 대상물을 힘껏 건드리다.
냄새가 갑자기 후각을 자극하다.
도박이나 내기에서, 돈이나 물건 따위를 걸다.
3.(자르기,꺾기,찌르기,트기)(동사)
지름길로 가깝게 가다.
식물의 겉순 따위를 자르다.
말이나 움직임 따위를 미리 잘라서 막다.
3번 지르다의 설명에서 '지름길'을 사용하고 있네요. '지르다'의 명사형 '지름'에서 '지름길'이 나왔든 원의 '지름'에서 지름길이 나왔든 그 의미는 동일한 것 같습니다. 다만 어느것이 먼저나왔는지는 국어학자에게 물어봐야되겠네요.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정중하고 설득력있는 댓글 기대합니다.
이상하군요. 댓글은 운영자만 지울 수 있는줄 아는데 왜 지워졌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댓글을 지우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감정적인 논쟁은 하지 말아주세요. 어원분석은 잘못 될수가 있고, 옳은 근거가 나오면 바로잡으면 되지 않겠어요. 나는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시된 견해를 다 인정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