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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생명은 아날로그다

현대를 ‘디지털시대’, ‘디지털사회’라고들 한다. 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서 이 시대, 이 사회의 모든 도구들이 디지털 기술에 의해 편리하게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이처럼 발전되지 않았다면, 정부공무원들은 문서를 직접 손으로 쓰거나 복사해야 하고, 사서들은 카드 목록을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며, 학자들은 200자 원고지에 논문이나 책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이 널리 보급되어 예전의 공책은 ‘노트북’으로 대체 되고, 정부, 학교, 대학, 은행, 기업 등의 모든 직원들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신속, 편리하게 업무를 보게 되었다. 지금 컴퓨터 시스템이 마비된다면 거의 모든 업무가 정지될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보릿고개 이야기, 새마을 운동 이야기,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때 이야기, 군대 이야기, 상사들의 서류복사 심부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CM(copy man)' 이야기 등 모두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들을 회상한다. 필자의 경우도 수업시간에 곧잘 옛날 경험담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신세대에게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보사회, 정보서비스, 정보미디어, 정보자료수집, OPAC(online public access catalog) 등 ’정보‘가 들어가는 수업을 할 때는 으레 옛날이야기가 튀어나온다. 나이 든 사람이기 때문인가 보다.

디지털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는 아니라도 우리 생활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이 개입한다. 그러나 디지털은 우리 생활을 도와주는 하나의 도구이지 우리 삶 그 자체는 아니다. 디지털은 무생물이지만 우리의 삶은 생명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생명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 같다. 만약 디지털이 생명이라면 로봇에 생명을 넣을 수 있어 로봇이 인간처럼 밥도 먹고, 배설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봇은 그러하지 못하다. 디지털은 가상적으로 나타나는 허상이다. 인간은 이러한 허상을 조작함으로써 생물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기억과 계산의 한계, 시간적, 공간적 정보교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생명은 아날로그다. 우리는 살아 있어 생각하고, 읽고, 쓰고, 감상한다. 생명이 있어 사랑하고 미워한다. 생명은 틀에 박힌 디지털 명령어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명령에 따라 살아간다. 생명은 유한하여 때가 되면 멸한다. 그러나 생명은 새 생명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생명은 행복의 주체이다. 아날로그나 디지털은 행복을 위한 도구(tool)이다. 그러나 생명행복에 더욱 가까운 것은 아날로그 도구이다. 왜? 생명 자체가 아날로그니깐.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생명을 살아가려면 아날로그적 관계들을 돈독히 맺어야 한다. 어른들이 아날로그만 있던 과거를 추억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인간적 행복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디지털 시대’와 ‘디지털 사회’라는 용어는 기술적 도구를 강조한 지엽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인간사회는 언제 어디서나 ‘생명 시대(life period)’, ‘생명 사회(life society)’이기 때문이다.(200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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