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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원

법전원

오늘 부산에서 54살 된 경비원 아저씨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너는 약간 의아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니, 다시 사법고시가 부활한 건가?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니 변호사 시험은 법전원 출신만 보는 제한 경쟁시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비원 아저씨는 동아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시에 28년 동안 응시했으나 계속 낙마하다가 늦게서야 같은 대학 법전원을 졸업했고, 또 변호사 시험도 2번 낙마하고 이번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너는 법전원을 들은풍월로 알고 있었지만, 변호사시험제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사법고시는 응시 자격에 학력 제한이 없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좋은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너는 사법고시 폐지를 마음속으로 반대했었지요. 사실 과거의 모든 공무원 시험은 응시 자격에 학력 제한이 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경제성장 및 고학력 사회로 발전하면서 이제 학력이 공무원 시험 자격에 필수 요건이 되었습니다. 빈부 격차, 학력 격차에 따라 새로운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친김에 호기심에서 사법고시와 법전원 제도를 좀 찾아보았습니다. 법전원이란 2009년 3월 전국 25개 대학에 인가한 법학전문대학원의 줄임말. 당시는 주로 로스쿨(law school)이라는 영어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공식적으로는 법학전문대학원, 법전원을 많이 쓰며, 로스쿨은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나 일상에서 주로 쓰고 있습니다. 법전원은 정부에서 사법고시 폐지방침을 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성립한 대학원입니다. 따라서 사법고시는 법전원의 첫 졸업생이 나오는 2012년부터 선발인원을 줄여나갔습니다. 2012년 500명, 2013년 300명, 2014년 200명, 2015년 150명, 2016년 100명, 2017년 50명을 끝으로 사법고시는 폐지되고(위키백과), 2018년부터는 법전원 졸업생들만 변호사 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법전원의 변호사 시험 응시 독점 제도는 매우 불평등한 제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민주사회는 인권 존중과 시민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인데, 이렇게 불평등한 제도를 민주 정부에서 공공연하게 운영하다니! 학력 차별 없이 누구나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해도 대부분은 법전원 출신들이 합격하겠지만 법전원에 다닐 수 없는 뜻 있는 빈곤한 사람들에게도 시험 응시의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특출한 능력자들이 있을 수 있는데, 왜 그들의 기회는 아예 막아버리나요?

너는 법전원 출신 그 부산 아저씨의 변호사 시험 합격을 축하드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실패한 승리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차라리 그렇게 평생 낙마할 것 없이 4년제 대학교 법학과 졸업자로서 진작 좋은 직장에 들어갔더라면 가족들이 행복했을 텐데, 그동안 가족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이제 54세에 법전원 출신 제한 경쟁 시험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해도 아직 6개월을 수습 받아야 하고, 그 후 변호사로서 법정에 선다 해도 신규변호사의 일감이 얼마나 많이 있을지, 하지만 100세 시대이니 그분도 50년 동안 변호사를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드네요.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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